새벽 3시. 또 정전이다. 좁은 원룸의 낡고 땀에 찌든 매트리스 위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한다. 바깥에선 끊이지 않는 경적과 엔진소리, 그리고 멀리 공원에선 고성방가 - 아니 진짜 새벽 3시에 양심이 없나 - 소리가 지상과 29층의 격차를 뚫고 요란하게 밀려든다. 예전에 봤던 기사에 따르면 마닐라의 밤 소음은 평균 99데시벨이라는데 이쯤 되면 전문가들이 건강하다고 하는 수준의 세 배가 넘는다. 이 벽도 얇고 창문은 더 얇은 도시에서 침묵은 그저 헛소리일 뿐. 도대체 어떻게 29층까지 올라왔을지 모르는 모기를 손등으로 튕겨 내며 이곳에서 과연 누가 제대로 눈을 붙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아, 그래, 많이 없긴 하지.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이 번아웃에 빠지는 건 당연하다. 이 도시로 오는 UN, NGO 직원과 자원봉사자 중 왜 어떤 이는 프로젝트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여기가 질렸어”라고 말하면서 떠나고, 또 어떤 사람은 10년 넘게 거주하며 뿌리를 내리는 걸까? 살기 시작한 지 한 3년쯤 되어가니 조금은 알 것 같은데, 집, 정확히 말하면 삶의 환경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천오백만 인구의 대도시 메트로 마닐라에서 생활환경이란 단순한 안락함을 찾는 일이 아니라, 제정신을 유지하고 나아가 생존하는 문제다.
2019년 말에 마닐라로 온 내 친구 J는 29세의 대학원생으로, WHO에서 6개월 무급 인턴십을 하고 있다. 그 친구는 회사 근처 고층 아파트에서 가장 싼 원룸에 묵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회사는 우기만 되면 물에 잠기는 동네에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 우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파트 로비에도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 그는 오늘 밤에도 비가 올 게 뻔하니 가방과 노트북을 쓰레기봉투 - 적어도 방수는 되니까 - 에 넣어두고 침대에 눕는다. 제발 일어나기 전에 물이 빠지길 기도하며.
아니나 다를까, 한밤 폭우가 지나간 뒤 눈을 뜨니 거리 전체가 무릎 깊이의 갈색 강으로 변했다. 한 이웃은 흙탕물로 범벅된 플라스틱 상자를 품에 안고 반쯤 수영, 반쯤 첨벙이며 지나간다. J 역시 크록스 사이로 스며드는 물…과 이상한 무언가를 무시하며 길로 나선다. 사무실로 오지 말라는 안내 메일이 없으니 7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한다. 평소엔 15분 거리, 오늘은 반쯤 수영하며 20분. 공기는 하수구 냄새 같은 악취가 가득하다. 회사에 도착해선 억지로 웃으며 직원들과 인사하지만, 그의 눈에는 피로가 고스란히 비친다. 이런 게 이번 달만 두 번째니 그럴 만도 하지. 태풍철도 아닌데.
정오쯤, 길에서 물이 빠지고 악취 나는 찌꺼기와 죽은 곤충, 쥐들만 남는다. 우기인데도 해는 또 어찌나 강한지 비를 다 증발시켜 그 냄새도 버티기 쉽지 않다. J의 1층 로비도 무사하진 않다. 로비 벽에는 눈에 띄는 수위 자국이 남아 있고, 청소부는 닳아빠진 수건으로 바닥을 닦아 양동이에 짜낸다. 홍수 뒤에는 오염을 막으려고 수도가 끊기는 게 다반사라, 샤워는 꿈도 못 꾼다. 뭐 애초에 온수도 안 나오긴 하지만. 결국 미리미리 쟁여둔 물로 몸을 닦을 수밖에.
J는 한국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한다. “일은 진짜 좋은데, 몇 주째 제대로 잠을 못 잤어. 시끄럽기도 하고, 비만 오면 내일 아침 또 물길 헤쳐야 하나 싶어서.” 그는 지난달엔 장염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홍수 때 오물 속을 걸어 다닌 탓인지, 길거리 15페소짜리 돼지고기로 연명한 탓인지는 모른다. 맛있어서 괜찮다며 웃어넘기지만, 눈에 진심이 담기진 않는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교수님께 보내는 메일에는 이런 고통은 적히지 않는다. 논문 이야기만 가득하지. 졸업은 해야 하지 않겠나.
아프리카에서도 살다 왔다는 그는 그곳 생활을 떠올리며 눈을 반짝인다. “누가 비행기표만 주면, 당장 지금이라도 갈 거야.” 거긴 편의시설은 더 부족했어도 평화롭고 행복했다며. 그런데 여기선? 넉 달 만에 그의 결심에 금이 가는 게 보였다.
COVID-19가 마닐라에 퍼지고 나라가 봉쇄된다는 소식이 들리자, 그는 첫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미 느꼈겠지만, 친구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도망친 이야기다.

그때부터 5년쯤 지났나. 돌고 돌아 다시 마닐라로 돌아왔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동네에 있다. 마닐라의 금융가, 마카티의 고층 아파트에서 차가운 맥주를 들이켜면서. 집주인은 여러 나라와 회사를 오가며 세상을 떠도는, 사람 부르는 걸 좋아하는 UN 직원이다. 그가 사는 이 집은 쾌적한 생활을 위한 많은 편의시설이 있는데, 지하엔 비상 발전기, 싱크대 아래엔 정수기가 있고, 두꺼운 이중창은 도시의 소음을 잠재워 마치 다른 도시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해가 질 녘이면 잡다한 무리가 어슬렁어슬렁 집으로 들어오는데 국제기구 직원과 자원봉사자,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그리고 같이 놀다 친해진 현지 친구들까지 그 군상이 참 다양하다. 집주인이 단골 식당에서 사 온 온갖 음식을 모두가 접시에 산더미처럼 담고, 갓 만든 진토닉을 마시며 수다를 떤다.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의 비공식 심리적 지지 그룹이다. 이런 모임의 대화가 그렇듯 금세 항상 반복하는 주제로 넘어가는데, 비만 오면 범람하는 도로와 홍수에 대한 악몽, 실시간 교통상황을 알려주는 앱에서 퇴근길 전 구간이 빨강으로 물들면 느끼는 불안, 새벽까지 이어지는 옆집의 파티 소리 등이다. 하지만 웃음도 넘친다. 세 시간 통근 - ”에르미타에서 BGC까지 세 시간?!” - 을 견뎌내는 이야기, 새로 찾은 맛집, 다음 주에 열리는 콘서트 등. 한 친구가 농담처럼 말한다. “마닐라의 모토는 ‘너를 잠기게 못 하는 것은 널 더 강하게 만든다.’ 가 어울리겠어.”
대화를 들으며 새삼 깨닫는다. 이런 작은 모임이 어쩌면 좋은 집 못지않게 많은 개발 협력 활동가들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는 이유라는 것을. 집주인은 십수 년 전 르완다 시골집에 살던 초창기를 회상하며 “도둑 걱정, 뜨거운 열기, 친구 한 명 없는 고립감에 지칠 뻔했다”고 고백한다. “마닐라에서도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여기로 이사 와서,” 그는 창 너머 반짝이는 스카이라인을 가리키며, “완벽하진 않지만, 숨통은 트였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마찬가지다. 안전한 주거, 괜찮은 위치, 서로 돌봐주는 이웃. 이 삼박자가 도시의 공격을 막는 방패가 된다. 피곤할 때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공간, 아프고 힘들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이웃, 그리고 힘든 하루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근한 얼굴들. 여기에 일마저 즐겁다면 그보다 더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음. 바랄 게 없진 않지. 그래도 이거만 있어도 숨은 쉴 수 있다.
사람을 오래 버티게 하려면 그들을 잘 챙겨야 한다는 건 너무도 당연하고 명확한 사실이며 꼭 개발협력 업계에만 한정된 이야기도 아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타국에서 업무를 하는 주재원의 86%가 외로움이나 고립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물리적 고립이 겹치면 번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반대로 공동체 의식과 안전감을 주면 번아웃을 막는 해독제가 된다. 세상에서 가장 분주하고 혼란한 도시 중 하나에서 안전한 쉼터를 찾는 것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집주인은 털어놓는다. “아마 이 지역으로 오지 않고 너희를 못 만났다면 난 에진작 마닐라를 떠났을 거야.”

몇 주 전 거세게 비가 내린 저녁, 끈적한 골목 시장길을 걸었다. 비가 내려도 주변은 여전히 무질서하고 생동감 넘쳤다. 웅덩이 물에 첨벙거리는 아이들, 고기를 파는 노점상, 매연을 내뿜으며 지나가는 지프니. 악천후에도, 비가 와서 길이 - 강이 아니라 - 범람해도 삶은 계속된다. 그들에게 마닐라는 집이다.
하지만 개발협력 활동가에겐 다른 공식이 필요하다. 그들은 큰 꿈을 안고 오지만, 견딜 수 있는 불편함에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생활환경이 바로 그 균형추가 되어 흔들림을 결정짓는다. 잘못된 동네의 허름한 방 한 칸은 매일을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는데 여기에 빡빡한 업무와 문화 충격, 외로움까지 얹히면 번아웃 아니면 조기 귀국 티켓이 약속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업무를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약해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 안전과 휴식이 충족되지 않을 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키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모든 것이 맞아떨어질 때—그럭저럭 괜찮은 집, 혹은 버틸만한 집을 찾고 공동체와 연결될 때—또 그림이 달라진다. 일상의 스트레스가 사라지지는 않지만, 감당이 가능해진다. 빗줄기는 여전히 장대 같고, 교통은 여전히 꼬이고, 치안도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하루 끝에 반겨 줄 얼굴이 있는 집이 있다면 내일도 또 견딜 수 있다. 그리고 모레도. 그다음도. 소박해도 피난처가 있다는 생각은 회복력을 낳는다. 우리를 ‘귀국행 비행기’ 대신 ‘현장’에 남게 한다.
결국, 집은 고향을 떠난 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단순히 서류상의 주소가 아니라, 폭풍 속에서 몸을 피할 수 있는 안식처. 그것은 국제개발 종사자에게 - 마닐라뿐 아니라 세계 어디든 - 장기적으로 공동체의 일부가 되는지, 아니면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라고 외치며 사업이 끝나기도 전 떠나는지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내가 필리핀에 온 지도 어느새 3년이 다 되어간다. 생각해 보면 이 일에 들어온 이후 한국을 제외하고 가장 오래 머문 나라가 되었고, 얼마 안 있으면 한국에 있던 기간보다 마닐라에 있던 기간이 많아진다. 지난 3년간 내가 보고 경험한 모든 것들 - 침수된 집부터 고층의 아파트, 지친 얼굴과 그런데도 웃는 사람들을 보며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날마다 당신을 시험하고 이방인으로 배척하는 도시에서, 밤마다 돌아갈 곳을 찾는 것을 사치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당신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어쩌면 이 아름답고도 괴팍하며 살아 꿈틀대는 도시의 혼란을 사랑하게 해 주는 생명줄이다. 그리고 결국 그곳이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여태 살고 앞으로도 살고 싶게 만들어주는 이유는, 좋은 가구와 집보다도 같이 웃고 울고 떠들 수 있는 사람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