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개발협력 업계에 종사하며, 가장 인상깊었던 날이 언제인가를 내게 물어본다면 탄자니아에 도착한, 파견 첫 날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꽤나 시간이 지난 이야기지만 한국에서만 살던 내게 아프리카에서의 첫 해외살이는 많은 교훈을 남겨주었다. 그 첫 날의 감정을 다시금 느끼며, 주니어 시절의 우리라면 무릇 공감할만한 파견 첫 날의 이런저런 이야기와 감정을 담아보기로 했다.
파견 첫 날 저녁이었다. 빛 하나 새지 않는 어둠 속 동기와 나는 사이좋게 헤드랜턴을 머리에 하나씩 끼고 LPG 가스버너를 노려보고 있었다. 버너에는 너구리가 보기 좋게 끓고 있었고, 우리는 냄비에 고개를 들이대며 헤드랜턴의 불빛으로 너구리의 익힘 정도를 보고 있었다. 적막한 어둠 속 한숨만이 이어졌고, 그날 저녁은 결국 설익은 너구리를 이빨로 끊어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물이 나오지 않아 양치를 하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앞으로의 긴 여정이 결코 내 뜻대로 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탄자니아는 꽤나 쌀쌀했다.
아루샤에 선선한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피부로 느끼기 전까진 믿지 못했다. 안개 속 우뚝 솟아있는 킬리만자로 산의 산봉우리를 보기 전까진 내가 탄자니아에 도착했다는 사실 또한 믿지 못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드넓은 초원이 날 맞이했다.
킬리만자로 공항은, 경유를 위해 잠시 내렸던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 공항과는 사뭇 달랐다. 아디스아바바 공항은 유럽의 여느 공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분주한 비즈니스맨들과 설렘을 안고 돌아다니는 여행객들로 공항이 꽉 차있었다.
하지만 킬리만자로 공항은 고요했고 몇 그루의 키 큰 나무와 끝이 보이지 않는 활주로가 전부였다. 하늘엔 먹구름이 드리웠고, 비가 조금씩 내렸다. 비행기에서 간이 계단을 내려와 바라본 그 건물이 공항의 전부라는 사실 또한 믿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디스아바바 공항을 보며, 아프리카의 첫 인상이 무척이나 반가웠기에 비즈니스 비자를 제시하고 입국심사를 마친 후 공항 밖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을 생각을 하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수하물 검사를 하던 중 검문원이 눈쌀을 찌푸리며 내 가방을 옆으로 치웠다. 한국 식품을 많이 가져왔기에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나를 독방으로 불러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다그쳤다. 처음 본 탄자니아의 공항 경찰이었기에 연신 진땀을 흘리며 이 식품들은 판매용이 아니며 내가 다 먹을 것이라고 항변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황급히 공항 밖에 대기하고 계셨던 지부장님을 불러 도움을 요청했고, 잠시 나를 밖으로 내보냈던 지부장님은 3분이 채 지나지 않아 공항 경찰과 오래된 친구처럼 농담을 따먹으며 방에서 나왔고, 경찰은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며 나에게 탄자니아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후에 듣길, 동양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일부러 모두 세워놓고 돈을 요구하기에 60불 정도를 챙겨줘야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단다. 긴 여정의 시작이 고달팠다. 밖으로 나와 킬리만자로 공항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고, 아루샤 시내까지 차를 타고 40분 정도 나왔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모든 게 신기했다. 염소 떼를 기르는 사람들, 군데군데 보이는 허름한 마을들이 날 반겼다. 여행객들이 꽤 있어 무심하게 지나갈 법도 한데 동양인이라 그런지 시선을 끌었다.

그렇게 긴 드라이브를 마치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진으로만 봤던 익숙한 사무실이 날 반겼고, 생필품을 사러 마트에 도착했는데 대형 마트가 있어 마음이 굉장히 놓였다. 이 정도면 파견생활이 어렵지 않겠다고 느끼며, 마트를 둘러보며 앞으로 해먹을 수 있는 음식 종류를를 머릿속에 되뇌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모두 풀고 탄자니아 생활이 정말 순탄하게만 흘러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까지 출퇴근도 모두 차를 타고 이동하고, 대형 마트도 있고,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이겠다는 안심을 하며 소파에 앉은 채로 인스타에 올릴 사진을 고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 크나큰 오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