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낯선 도시에 도착했을 때

런던 첫날 밤, 괜스레 카메라를 켜 들고 혼자 중얼거렸다. “이제 나도 런던에서 석사라니, 참 멋지다.” 뭔가 대단한 여정이 시작된 듯한 기분. 매일 기록을 쌓아주면 나중에 돌아봤을 때 꽤 근사할거라 생각했다. 물론 귀국 두 달 전, 소매치기를 당하기 전까진.

참고로, 런던에 도착하면 외교부에서 문자 하나가 도착한다. “6분마다 휴대폰 소매치기. 조심”. 그땐 그냥 넘겼지만, 이게 그렇게 현실적일 줄은 몰랐다.

1년이 흘러, 나는 석사 1년차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런던이 그리울까? 런던 그 자체보다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눴던 질문들 - 그 고민의 공기만큼은 분명 그리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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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개협 동료들과 장하준 교수님의 Development Leaders Dialogue (DLD) 행사 후에 (미참석자 합성 😁)

나는 그곳에서 다시 한 번 다짐했다. “①실질적 효과를 내는 기후 재원이 ②가장 필요한 곳에 ③ 충분히 닿도록 하겠다.” 3년간 몸담은 국제기구 현장에서 시작된 이 목표는, 정책의 힘으로 구현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영국에서 석사를 하신 지도교수님은 고개를 저으셨다. “1년으론 부족할 거야.” 그 한마디가 내 선택을 바꿨다. 결국 2년 풀타임 석사를 택했다. 1년차는 런던에서 행정학, 2년차는 뉴욕에서 기후와 에너지, 환경을 세부 전공한다. 단순히 학위를 얻기 위한 여정이 아니라, 내 문제의식을 언어화하고 방향을 정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석사 과정 지원 과정이 궁금하다면 블로그를 참고해주세요.)

2. 세계 각지에서 온 질문들

첫 등교날, 둘러본 교실은 놀랍도록 다채로웠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국제기구, 금융기관, 컨설팅, 금융, 민간 기업, 시민 사회까지 - 각자의 커리어가 전부 다른데도 “정책”이라는 공통어 아래 모인 사람들. 정치와 재정, 효과성 분석 등 다방면의 정책 역량을 다루며, 우리는 각자의 언어를 공유하는 법을 배웠다.

나 역시 개발협력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기후와 정책을 연결하는 법을 고민했다. 선배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연합(UN), 세계은행(WB)에서 정책 자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언젠가 나도’라는 희망을 심어줬다.

봄, 아시아개발은행(ADB) 인턴 면접에서 탈락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빈 여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선택이 틀렸던 건 아닐까 불안이 들이닥쳤다.

3. 고민은 모두의 몫이었다

나는 개발학 대신 행정학, 더 깊이는 기후 정책을 택했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싶었다. 다행히 개발협력 동료들은 학과 안팎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고, 덕분에 고민을 나누는 자리는 풍성했다.

내가 정리해 본 비공식 통계(!)는 이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