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8일, 올해로 480주년을 맞이하여 개최된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 행사 소식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가 온갖 모략에도 굴하지 않고 백의종군하며 왜구를 물리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우직한 인내심의 운명을 짊어지고 태어난 황소자리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ENFP의 상상력은 그의 손금은 과연 짧았는지 어떤 에니어그램 유형의 리더십이었을지 궁금하다가 결국 혈액형까지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적군 화살을 맞고 쓰러지며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던 마지막 말은 혹시나 자신의 혈액형이 A형이라면 ‘됐어요, 피 수혈 안 해줘요’ 라는 말을 들을까 봐 걱정했기 때문일…리는 없겠지.

이토록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쓰잘머리 없는 나의 상상력은 어린 시절부터 길러온 나름 노력의 산물이다. 생년월일 그리고 태어난 시간을 알면 미래를 알 수 있다는 사주라는 것을 처음 알았던 어린 시절, 나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사고를 조심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을 때 “근데 옛날에는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없었는데 그런 점괘는 도대체 어떻게 나와요?”라고 되물었다. 당돌한 꼬마의 질문에 역술가는 “바퀴를 조심하라는 뜻이지.”라며 에둘러 말하였고, 이후로 30년이 지나도록 바퀴벌레를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꽤 납득이 가는 해석이었다.

몇천 년 전에 만들어진 오래된 개념들이 현대에 적용되는 방식은 무척 흥미롭다. 매일 방구석에서 처박혀서 인터넷만 하던 시절, 나는 재밌는 글을 하나 보았다.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 계속 떠돌아다닌다는 역마살은, 21세기에 이르러서 이 사이트 저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종일 인터넷만 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물론 사주니, 살(殺)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여기지는 않지만, 끽해봤자 ‘인터넷 페인’ 소리만 듣던 나에게 ‘사이버 역마살’이란 너무나 그럴싸한 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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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처음으로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서 발을 내디뎠던 곳은 미얀마였다. 보람차고 뿌듯한 추억보다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실에서 고생한 기억밖에 없기는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이후 베트남으로 방향을 돌려서 지금까지. 인터넷 사이트를 떠돌던 20대 디지털 유목 시절을 지나 30대는 오로지 해외에서만 물리적 유랑의 시기를 지낸 뒤 이윽고 40대가 된 지금. 어쩌면 내가 많고 많은 일 중에서 국제개발협력을 선택하고, 또 그중에서도 해외 파견직으로 지내고 있는 것은 내 핏줄에 무언가 새겨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여전히 불필요한 상상력에 기반하고 있을지언정, 역마살로 시작해서 나의 운명을 찾아 더듬거리는 여정은 멈추지 않고 이내 문학으로 뻗어 나간다.

“진주에 기생이 많았다고 해도/우리 집안에는 그런 여자 없었다 한다/(…)/우리 집안에 열녀는 있어도 기생은 없었단다”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김이듬 시인의 <시골 창녀>라는 작품을 나는 좋아한다. “내 마음의 기생은 어디서 왔는가/오늘밤 강가에 머물며 영감(靈感)을 뫼실까 하는 이 심정은/영혼이라도 팔아 시 한 줄 얻고 싶은 이 퇴폐를 어찌할까/밤마다 칼춤을 추는 나의 유흥은 어느 별에 박힌 유전자인가/나는 사채이자에 묶인 육체파 창녀하고 다를 바 없다”라면서, 전통적인 여성상과 이를 강요하는 사회적 규범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인으로서, 또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의 욕망과 자아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내 시인 본인은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 ‘나쁜 피’라고 욕되어도 그 운명을 거부하지 않는다. 이러한 김이듬 시인의 작품에 감히 견주기에는 부끄럽지만, 국제개발협력 현장을 떠도는 나는 어떤 주체성을 지니고 있는가? 나 역시 나의 욕망을 위해 스스럼없이 선언할 수 있는가? 과연 나는 얼마나 내 의지를 반영해 이 ‘떠도는 삶’에 순응할 수 있는가?

사실 해외 파견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혹자는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누가 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저 국제개발협력이기 때문에 해외 파견을 나간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단편적인 접근이다. 그렇다고 사주팔자니 핏줄 같은 것을 떠들 생각은 없지만, 자신이 나고 자란 환경을 떠나서 자신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최소 몇 개월 몇 년을 지내는 환경 앞에서 어떤 선택이 본인에게 필요한지 스스로 되물어봐야 한다. 일로서 ‘해외 파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해외 파견’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실즈는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에서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고 말했다. 역마살 낀 내 사주 때문에 한국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바다 건너 누군가를 찾아 떠난다는 것도 국제개발협력의 사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감상적인 접근에 쓰잘머리 없는 상상력에 의존한다고 보이겠지만, 시 한 줄을 얻기 위해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시인의 고백처럼, 때때로 나 자신을 팔아 타인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결정 아닐까? 여러 의미를 지닌 선택 앞에서 무엇이 좀 더 내 삶에 무게를 더할지 고민하는 까닭은 아무래도 내가 균형을 중시하며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천칭자리이기 때문일…리는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