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타쿠는 아니지만, 아이돌 노래로 일본어를 배웠다. 일본의 미래는 세계가 부러워한다는 허무맹랑한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었지만, 그때는 그러했다. 애초에 나와는 다른 생각, 다른 언어, 다른 문화라는 인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저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난생처음 접하는 문자와 소리를 친숙하게 여기면서 내 사랑을 증명해 나갔다. 물론 누구도 증명해달라고 한 적 없는 지고지순한 사랑이기에 종종 “신기하네요, 저는 무언가를 그렇게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요.”라는 오타쿠를 향한 순박한 잔혹한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면 나는 안경을 한 번 쓱 치켜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한다. 사랑의 위대함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

나는 오타쿠가 아닐지라도, 게임을 좋아한다. 컴퓨터나 모바일로 즐기는 온라인 게임보다는 주로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닌텐도 같은 콘솔 게임을 주로 즐기는데, 특히 게임 하나 하나가 지닌 역사와 서사를 되짚어가면서 플레이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소 매니악한 장르이긴 하지만 30년 넘도록 지금까지 발매되며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게임 시리즈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선호하는 이야기는 아니라서 늘 등한시하고는 했지만, 30주년 기념 타이틀까지 발매되었을 때는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라는 생각에 타인의 사랑을 훔쳐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사랑을 이해받기를 바란 적은 없지만,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마치 내 생각이 닿기라도 한 것처럼, 이 게임에서 등장하는 여러 필살기 중 ‘사랑’이라는 가장 강력한 것은 기술이 있었다. 아군 전체의 체력을 채워주는 ‘인연’도, 누군가의 정신력을 회복해 주는 ‘희망’도, 공격력을 올려주는 ‘용기’도, 이 ‘사랑’의 효과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역시 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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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타쿠가 아니라서, 건담 시리즈를 잘 모른다. 전 세계적으로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건담을 두고 ‘로봇들이 나와서 치고받는 전쟁물은 안 좋아한다’라고 하면 먼저 건담은 로봇이 아니라 모빌 슈츠라는 일장 연설을 먼저 듣게 되는데 - 그리고 나면 건담은 전쟁의 잔혹함 속에서 휴머니즘을 싹 틔워 나가는 우주 역사물이라는 주제 의식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한 번은 그들의 사랑에 호응해 보려고 작품 하나를 추천받은 적이 있는데, 내가 살고 있는 동남아를 배경으로 한다고 해서 찾아봤거늘 하필이면 그 작품은 사실상 연애물로 평가받는 시리즈였었다. 일반적으로 건담 시리즈라고 하면 특별한 능력을 갖춘, 일명 뉴타입(Newtype)의 주인공이 건담 기체를 타고(로봇은 아니라고 한다) 싸우는 전쟁 영웅의 이야기지만, 이 시리즈는 뉴타입도 영웅도 아닌 일반 병사가 적군과 사랑에 빠지고 – 급기야 군인의 의무를 저버리고 전장을 이탈하는 이야기다. 전쟁이란 거대한 이념 간의 충돌인 것처럼 포장되지만, 사실 그것은 그저 대의를 빙자한 특정 집단의 이익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요즘. 전쟁터에서 발견한 사랑은 그 어떤 충돌로도 뒤엎을 수 없는 가장 순수한 저항일 것이다.

나는 오타쿠가 아니든 맞든, 국제개발협력에 종사하고 있다. 옷깃 한 번 스친 적 없는 인연의 사람들을 어떻게든 이해해 보겠다고 아무런 연고 없는 땅에 도착해서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면서 그들의 시간에 스며드는 일은 사랑이라는 단어로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국제개발협력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일 중에서 가장 사랑과 닮아 있고, 나는 그 사랑의 비유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가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만이 유일한 사랑이며 절대적으로 숭고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국제개발협력 활동은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주석을 쉼 없이 달고 있는 과정임이 틀림없다. 누군가를 인식하고 알아가며 이해함으로써 그 의미를 찾아가는 실천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가치. 때로는 개발협력 활동가의 사명이 무엇인지, 돈을 벌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지 알 수 없는 우리의 삶 속에서 이 사랑의 덕질이야말로 근본적인 삶의 가치가 아닐까? 수많은 분쟁과 분열, 그리고 전쟁의 나날이 이어지는 아픔 속에서 외친다. “It’s Not War, Just the End of Love!”

https://www.youtube.com/watch?v=Jz2gvAApY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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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에세이에서 언급된 1. 아이돌의 이름, 2. 게임의 제목, 3. 건담 시리즈의 제목의 정답을 “김칩 피드백 남기기”로 보내어 맞추신 분에게는 2025년 공사모 개발새발이 수여하는 ‘당신도 제법 오타쿠’ 타이틀(공신력 없음)과 함께 소정의 기프티콘을 드립니다. (응모시 연락 받을 이메일 주소를 꼭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