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으로 파견 온 지 서너 달 남짓 된 직원이 지독한 감기에 걸린 모양이다. 사시사철 무더운 이 나라에서도 꽤나 흔한 질병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낯선 환경 탓인지 다들 그맘때쯤이면 어디선가 감기 하나씩 달고 나타난다. 아침 내내 코를 훌쩍이고 기침을 쏟아내던 그는 점심시간이 되자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뜨끈~한 염소탕 한 그릇 든든~하게 먹으면 좀 낫지 않을까 싶었거늘, 그는 햇반 하나와 포장 김치 그리고 삶은 계란을 차곡차곡 그릇에 담았다. 감기 걸린 거 같은데 그걸로 되겠어요? 라며 밥 한 끼 사주지 못할 망정 걱정 어린 질문을 하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한식이잖아요.
한식. 한식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흰 쌀밥에 반찬을 먹는 것이 기준이라고 하기에는 동남아시아 대부분 국가들도 그렇게 먹는다. 혹시 김치가 곁들여지면 한식인 걸까? 그렇다면 김피탕도 한식인 걸까? 한식인 것 같기도 하지만 어째서인지 조상님 제사상에 조선왕조실록, 물티슈와 함께 올리기에는 주저하게 된다. 그렇다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여 밥, 국, 김치와 각종 반찬에 찌개 혹은 볶음이나 구이가 차려진 상차림을 한식이라고 하기에는 이 땅의 수많은 자취생을 눈물짓게 만들지도 모른다. 형태로서 한식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사람들이 주로 먹는 게 한식이라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한 결론일지도 모른다.

올해로 베트남살이 12년차를 맞이하였다. 이쯤 되면 주변 지인들과의 대화는 내가 하고 있는 국제개발협력이라는 일에 대한 감상보다는 “베트남 음식 진짜 맛있더라”로 흘러가고는 한다. 특히 ”특히 우리 동네에 베트남 사람이 하는 베트남 음식점 생겼어!” 라는 말도 자주 듣는데, 그만큼 한국 사회에 베트남 사람들이 깊숙이 자리를 잡은 것 같아서 반갑기도 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베트남 사람이 운영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맛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이런 것이다. 르 꼬르동 블루에서 정통 양식을 배운 한국 셰프의 레스토랑과, 단지 프랑스에서 태어나서 그 음식을 많이 먹어봤다는 이유로 차린 식당을 비교하는 격이랄까. 굳이 흑백요리사를 비롯한 각종 요리 방송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요리가 단순한 포만감을 넘어 정서적 안정감과 심미적 만족까지 채우기 위해서는 그 요리가 가진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한국의 ODA는 ‘K-무언가’를 앞세워 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마치 한식의 김치처럼, 김치라는 단어 하나에 모두가 한식을 떠올리듯 K라는 접두사는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쉽게 각인시킨다. 하지만 김치가 한식의 전부가 아니듯, K-ODA가 곧 한국의 원조 전략 모델 그 자체일 수는 없다.
솔직히 나에게는 K-ODA가 무엇을 타겟팅한 전략인지 여전히 모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한국이 갖고 있는 브랜드 이미지 앞세운 화려한 상차림을 만들어 내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그 식탁에 올라온 반찬이 현지인들에게 실질적으로 몇 칼로리의 열량을 제공하는지, 영양학적으로 어떤 이점이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현지 사람들 입맛을 어떻게 돋우게 하는지 – 이 모든 것들이 K-무언가라는 이름 아래 첨예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인스타 감성의 멋진 레스토랑에 방문하기는 했으나, 정작 그곳에서 팔고 있는 음식은 그저 인증샷을 위한 배경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현장에서는 걱정이 앞설 때가 많다.
간판도 제대로 안 걸려 있고 메뉴도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가게일수록 역사와 전통을 지닌 맛집일 가능성이 높다. 소위 노포라는 점에서 이미 그 맛이 보장되어 있고 굳이 가게 이름을 알리려고 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점, 한 번 방문해보면 이 곳에서는 정말 맛있는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맛집이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식당 간판은 물론 출입문, 테이블, 의자, 직원 유니폼, 그릇, 심지어 젓가락에도 온통 가게 이름을 새겨놓은 식당이라면 피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손님이 궁금한 것은 “이 곳이 누구의 식당이냐?”가 아니라 “이곳이 어떤 가치를 내놓느냐?”이기 때문이다. K-ODA라는 식당은 지금 어떤 음식을 내놓고 있는 중일까?
파견지에 새로 온 직원이 아플 때 차려 먹은 흰 쌀밥에 김치, 삶은 달걀은 그에게 훌륭한 한식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뜨끈한 염소탕도 아니었고 관리자가 생색을 내면서 사주는 밥 한 끼도 아니었을 것이다. 낯선 땅에 온지 몇 개월 되지 않은 그가 겪었을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식사였다면 꼭 쌀밥이 있든 없든 김치가 있든 없든 그에게는 한식이었을지도 모른다. 형식이 아니라 본질이 앞서는 음식. 어쩌면 그게 한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