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했던가. 요즘 앞이 잘 안 보이는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아무래도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힌트를 얻고 싶나 보다. 그래서 전에 쓴 에세이를 쭉 읽어보았다. 김칩 1호를 발행하던 때의 기록도 다시 들춰봤고, 2020년 가을에 원더스 카메라 앞에 앉아 "프리랜서로 산다는 것"을 떠들던 영상도 다시 꺼내봤다. 그 위에 최근 마친 신규 조합원 모집 지원서 묶음과 면접 노트를 올려두었다. 내 컴퓨터엔 위엔 세 개의 시간이 펼쳐져 있었다.

시작은 정말 작았다. 코로나로 너덜너덜해진 2020년, 우린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하나둘 분야를 떠나던 시기에 4명이 모여 술 마시며 책 이야기 하던 모임이었다. 거기서 "딱 열 번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 김칩 뉴스레터였고, 그 김칩을 매개로 하나둘 사람이 모이며 공사모라는 커뮤니티가 태동했다. 그때의 공사모는 누구를 바꾸겠다는 비전 같은 것보다는, 그냥 떠나지 않고 옆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만든 자리에 가까웠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스노우볼이 구르기 시작했다. 한 명이 두 명을 데려오고, 모르던 두 명이 함께 하고 싶다고 연락을 하고, 다채로운 결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일이 일어났다. 뉴스레터가 더 단단해졌고, 빈곤 포르노 근절 캠페인이 만들어졌고, 일자리 생태계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작년의 일자리 생태계 공론화는 공사모를 법인으로 설립하는 분기점이었다. 그 전까지 공사모는 많은 사람들에게 "재밌는 커뮤니티"로 보였던 듯 하다. 좋은 사람들이 모인 따뜻한 모임, 오카방도 운영하며 정보 좀 얻을 수 있는 채널, 가끔 사람 모이는 행사도 여는 그런 곳. 그런데 작년의 일자리 생태계 공론화 활동은 그 위에 한 층을 더 올렸다. 분야의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조직, 분야와 섹터를 넘어 정책과 현장을 잇는 플랫폼, 그래서 청년들이 떠나가는 이 분야의 흐름에 작은 균열을 내려고 시도하는 단위. 그렇다고 그 전의 "재밌는 커뮤니티"가 사라진 건 아니다. 오히려 그 토대가 단단했기에 그 위에 새로운 층을 올릴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안전감을 느끼고, 느슨하게 연결되어 외로움을 덜고, 필요할 때 바짝 힘을 내어 목소리를 내고, 그래서 옆에 있어줄 동료가 있다는 감각. 덕분에 "청년들이 재미있게 활동하는 국제개발협력 생태계 조성" 이라는 비전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공사모를 바라보는 공사모 멤버들의 시각을 모두 모으면 이렇게 된다. (출처: 조합원 대상 공사모 점검 설문조사, 2026)
이번 신규 조합원 모집을 받으면서 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이전에는 "재밌는 커뮤니티"로 우리를 보고 들어온 이들이 많았다면, 이번에 손을 든 이들은 그 공론화의 흐름을 목격하고 함께할 결심을 한 이들이다. 어떤 분은 "공사모가 단순히 정보를 공유하는 조직이 아니라,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실제로 함께 움직여 나가는 공동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적었다. 어떤 분은 "구조 자체를 함께 바꿔나가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공사모가 열어온 공론장이 바로 그 움직임의 출발점이라 느꼈다"고 적었다. 또 어떤 분은 "초기에는 하나의 커뮤니티로 인식되던 공사모가 국제개발협력 생태계의 구조적 문제를 다루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인식이 크게 확장되었다"고 짚었다. 우리보다 더 또렷하게 우리가 지나온 변화를 알아채고 있었다.

한 분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면 좋겠어요." 그 말을 듣는데 뭉클했다. 입버릇처럼 외쳐온 그 말과 거의 같은 문장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말이 정말 김칩이나 공사모의 활동을 통해 그분에게 가닿은 건지, 아니면 같은 분야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같은 마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을 또 한 명 만났다는 것, 그 자체가 좋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작은 희망 하나가 마음 한쪽에서 자라났다. 우리가 작년에 시작한 것이 공론화였다면, 지금부터는 ‘공진화’가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희망. 이 분야의 문제를 함께 말하는 단계를 지나 이 분야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 변하고 함께 자라는 단계. 그렇게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공진화의 물결에 올라타기 시작한다면, 정말로 ‘행복하게 일하는 성숙한 국제개발협력 생태계’도 우리 눈앞에 와 있게 되지 않을까.

공사모는 사실 태동할 때부터 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청년들이 재미있게 활동하는 국제개발협력 생태계 조성"이라는 목적지로. 시작했을 땐 4명이 탄 작은 돛단배였다. 노를 저으면서도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안 보일 만큼 작았다. 그런데 6년이 지난 지금, 그 돛단배는 그때보다 큰 배가 되었다. 다채로운 결의 동료들이 한 배에 올라타 각자가 잘하는 방식으로 노를 젓고, 돛을 올리고, 항로를 그리고, 갑판을 닦고, 커피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눈다. 어떤 이는 뉴스레터를 만들고, 어떤 이는 공론장을 열고, 어떤 이는 캠페인을 띄우고, 어떤 이는 그저 옆자리에 앉아 누군가의 외로움을 덜어주며 느슨하게 함께 한다. 배가 커졌지만 무엇 하나 놓치지 않을 거다. 처음 4명이 모여 술 마시며 책 이야기 나누던 그 결도, 모이면 일단 즐겁고 안전한 그 감각도, 느슨하게 연결되어 서로의 어깨가 되어주는 그 분위기도, 이 모든 것이 활동의 토대다. 이 토대를 굳건히 지키면서 그 위에 한 층 한 층 새로운 층을 더 올려가는, 좀 독특한 다층 구조의 커뮤니티가 되어가고 있다. 배가 커지면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끔 어리둥절한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작은 돛단배일 때와는 다른 풍경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 보면, 우리가 향하는 방향은 처음과 같다. 다만 이제는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료가 훨씬 많아졌고, 가는 방식도 훨씬 다채로워졌으며, 우리가 함께 만드는 층이 훨씬 두꺼워졌을 뿐이다.
수많은 장면이 스쳐지나간다.






나도 공사모 같은 조직은 처음 해본다. 이런 조직을 운영하는 건 물론이고, 비슷한 성격의 조직에 멤버로도 참여해본 적이 없다. 하루하루가 시행착오의 연속이고, 어떤 날은 "이 방향이 맞나" 싶고, 어떤 날은 "내가 잘 하고 있나" 싶다. 아는 척 하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혼자 모르는 게 아니라는 것. 옆에 같이 모르고 같이 만들어가는 동료들이 함께 있다는 것. 그게 가장 큰 변화고, 가장 큰 안심이다.
보상 없는 이 활동을 한 지도 어언 7년차다. 김칩도, 오픈 카톡방도, 생태계 공론장도, 빈곤 포르노 비판도, 커피챗도, 정책 제안도.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고, 한 일에 대해 돈으로 보답받은 적도 없다. 앞으로도 딱히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내가 상정한 문제에 지금처럼 계속 도전해보고 싶을 뿐이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국제개발협력을 선택했다. 그게 오래 전의 나였고, 지금의 나이고, 앞으로의 나이기도 할 거다. 그러니 인건비도 없이, 오히려 회비를 내고, 자기 시간을 쪼개서 모르는 사람들의 행복을 고민하는 이 이상한 활동을 앞으로도 계속 하게 될 것 같다. 기꺼이 마도로스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