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개발협력 분야에 들어온 지도 2년이 되어간다. ‘나는 지금 잘 나아가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자연스럽게 처음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를 떠올리게 된다.
어릴 때부터 사람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열심히 준비한 시험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날 지치게 했고, 모든 것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짧은 해외봉사를 다녀왔다. 그곳이 내 진로를 결정하는 데 8할이나 차지하게 될 줄은 정말 모른 채…
이름을 말해도 대부분 잘 모르는 서아프리카의 한 국가였다. 분명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그곳에는 형태를 갖춘 화장실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도 없었다. 베이스캠프 밖은 닭과 물웅덩이, 쓰레기로 가득했고 내 짐에는 개미가 들끓었다.
각오는 하고 갔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했다. 평소 벌레도 무서워하고 더러운 걸 잘 못 견디는 나에게는 꽤 버거운 환경이었다.
도착한 첫날부터 달력에 X자를 그으며 날짜를 세기 시작했다. 어랏 아직 한달 반이라는 시간이 남았는데.. 빗물이 똑똑 떨어지는 천장을 바라보며 여기서 난 뭘 얻어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과 탐색전을 가진지도 며칠이 지나자 우리는 서로 경계를 풀어갔다. 아이들은 내가 지나가면 이름을 부르며 따라왔고, 어른들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야기들은 내가 해결해줄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가족 이야기, 돈 이야기, 몸이 아픈 이야기들.
그럼에도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나누는 데 익숙했고, 사소한 일에도 즐거워하며 라디오 속 노래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었다. 조금 친해졌다고 하나뿐인 오렌지를 나눠주고, 내가 예쁘다고 말했던 옷감을 기억했다가 몇 주 뒤 직접 치마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낯선 나에게 그렇게까지 호의를 베푸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고맙기도 했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나누기 시작했다. 정수한 물을 함께 마시고, 아껴두었던 간식을 건네고,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 어느 날에는 칫솔을 쥐어주며 왜 양치를 해야 하는지, 손은 어떻게 씻어야 하는지 설명하기도 했다. 마을을 돌며 위생교육을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칫솔을 살 돈도 부족하고 손 씻을 물도 충분하지 않은데, 내가 지금 하는 이야기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실 봉사활동에서 위생교육은 아주 작은 부분이었다. 성과를 기대하고 한 활동도 아니었고 전문가라고 할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냥 잠시 머물다 돌아와도 이상하지 않은 보여주기식 일정이었다. 하지만 그 허술한 교육에도 눈을 반짝이던 아이들을 보며, 이곳에는 왜 안전한 물이 들어올 수 없는지 궁금해졌다.
결정적인 사건도 있었다. 나는 장티푸스에 걸렸고 며칠 동안 고열과 복통에 시달리면서 몇 번이나 정신을 잃었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뭘 먹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이대로 죽는구나 싶어 짧은 유서도 썼다. 지금은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 당시에는 굉장히 심각했다. 깨끗한 물이나 위생 같은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생활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걸 몸소 깨달은 순간, 뭔진 몰라도 이런걸 해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그 마음을 그대로 자소서에 쏟아냈다. 그리고 WASH 사업을 하는 기관의 YP로 일하게 됐다. 그곳이라면 내가 품었던 질문들에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일을 시작하고 보니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국가 간 정치 상황, 지역 문화, 예산, 환경 조건 등 수많은 요소가 얽혀 있었다. 단순히 지하수를 개발한다고 끝나는 문제도 아니었고, 시설을 만든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 안에서 그 시스템이 지속될 수 있느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