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고 동그랗게 살고 싶다는 평범한 마음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나의 국제개발협력 진입은 무모하고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됐다.

전공도 다르고 관련 경험도 거의 없던 내 첫 도약은 사업수행기관 YP였다. 채용 공고에서 본 ‘회계 지원 업무’를 위해 바보 같게도 전산회계 자격증을 딴 나는, 당시 나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주는 따뜻한 기관을 만났다.

기관은 나에게 과분한 기회들을 주었다. 기본적인 해외사업 관리의 틀을 익히게 해주었고, 현지 직원들을 교육할 기회도, 제안서를 작성할 기회도, 기관의 매뉴얼을 제작할 기회도 주었다. 덕분에 나의 7개월은 고되기보다 이상하게도 들떴다.

첫 출장지는 케냐였다. 건조한 흙냄새와 낯선 풍경 속에서 나는 비로소 이 일이 말뿐인 이상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곳은 내게 멈추지 않겠다는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우리 기관의 전문성은 현장을 변화시키고 있었고, 사업에 참여한 현지 주민은 나의 한국 이름을 외워 불러주었다. 내가 뭐라고 그들은 나에게 감사와 고민을 표했고, 우리는 틈만 나면 악수를 했다. 오랫동안 간직해온 꿈이 실현되는 시간이었다.

나의 일이 단 한 사람의 삶에라도 작은 생기를 더할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것도 그냥 하는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결코 가벼울 수 없었다. 현장이 주는 두근거림은 분명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다.

YP 졸업 후 우당탕 사업 담당자가 된 나는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느라 케냐에서의 감정을 자주 잊었다. 야속하게도 하루는 너무나 바빴고, 해내야 하는 일은 눈앞에 가득 쌓여있었다. YP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던 일도 담당자가 되니 깊이 공부해야 했고, 내 답변으로 현장의 하루가 달라지기도 했다. 물론 내가 엄청난 걸 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고민해도 결과의 질이 달라지기에 나는 많은 순간 긴장했다.

지금 내 앞에 닥친 새로움 또한 익숙해질 것을 안다. 1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나는 동안 나는 분명 많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예전엔 한 달 내내 붙들던 업무를 하루 만에 끝내고 또 다른 업무를 쳐낸다. 나만의 업무 메일 말투가 생겼고, 후임의 엑셀 수식 오류도 해결한다. 대하기 어려웠던 현지 직원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업무 너머의 고민을 나누며 마음을 가득 내보인다. 다른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계속해서 질문하고, 해결 방안을 공부한다.

하지만 주니어는 아직도 모든 게 어렵다. 준비가 무색하게 겪게 되는 수많은 변수에 실소를 지을 때도 있고, 개발협력의 구조적인 한계 앞에 무력해질 때도 있다. 매번 닥쳐오는 바쁜 시즌을 내년에 또 겪게 될 거라 생각하면 숨이 막힐 때도 있고, 노력에 비해 적은 급여 앞에서 실망감을 느낄 때도 있다. 자주 실수하고, 자주 흔들리고, 자주 멀리 갔다 자주 돌아온다.

가끔 선배들에게 “이 일을 왜 하세요?”라고 묻는다. 대답은 다른 듯 비슷하지만, 누구나 본인만의 소신과 철학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내 심장을 뛰게도 한다.

갈대 같은 마음을 가진 초심자로서, 나 또한 멈춰 앉아 스스로의 속내를 꺼내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아주아주 마음이 힘들었던 어느 날, Sustainability를 외치는 이 자리에서 무엇이 나를 지속가능하게 할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