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메일 사용 경험은 언제부터였을까?
나의 중학생 시절부터 카톡이 유행하다보니, 아마 이메일보단 카톡을 먼저 더 자주 쓴 경험이 있다. 중고등학생의 나에게 이메일은 대용량 파일을 전달하는 수단이었으며,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과제 제출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기에 나는 이메일 사용, 예절 등에 대해 전무했다.

메일 예절이란 하나도 없는 나의 중학교 1학년 시절 이메일 목록이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 후에 간 군대는 나의 첫 사회생활이었다. 군대에서의 이메일은 상급자의 생각을 전파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이메일 내용이 간단했다. 정확히는, 간단해야 했다.
“이상 없습니다.”, “조치 완료했습니다.”, “확인했습니다.”, “이 규정대로 해야합니다.”, “상급자 지시사항입니다.”
짧고, 명확하고, 여지가 없었다. 보고는 판단이 아니라 전달이었고, 책임은 이미 위에 있었다. 사실 아침 회의, 오후 결산 하면서 각 부서장, 각 부대에 구두로 이미 설명한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메일보단 온나라 메모보고를 더 사용했고, 메일을 사용하는건 극히 드물었다. 그때까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메일이란, 이미 검토 받은 보고를 전파하는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그래서 나의 첫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국제개발협력에 뛰어들었을 땐 일하는 방식은 비슷할거라 생각했다. 메일보단 먼저 구두로 이야기하고, 이야기한걸 공유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모든 사업 이해관계자가 같은 사무실에 있는게 아니다보니, 전화, 카톡, Whatsapp, Telegram, Viber, ZOOM 등 연락 수단이 많아지면서 구두로 이야기하면서 결정은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 이때 가장 많은 메신저 어플을 다운 받게 된 것 같다.) 또한 시차로 인해서 결정이 미뤄지고 겨우겨우 시간을 맞추어 구두로 결정을 한다한들 모두 휘발되어버리더라. 그럴 수록 이메일을 활용해서 결정된 사안을 기록해야했다. 이메일이야말로, 공식적인 소통 창구였다.
그리고 내가 가장 신기했던 건 발주처의 담당자들은 발주처에 가서 하는 회의가 없다면, 한번도 대면하지 않고 이메일로 소통만 하다가 사업이 끝나더라. 내가 생각했던 건 최소한 사업 시작할땐 서로의 얼굴을 알고 시작하거나 사업 종료하면서라도 보고 인사할 줄 알았다. 이제는 이메일로 사업 시작을 알리고, 사업 종료와 담당자 변경을 잘 알리는 실무자가 되었지만 처음 맡았을 당시는 굉장히 신세계였다. 마치 내가 동물의 숲의 NPC가 된 것마냥 이리저리 온라인 상 연락하는 가상 세계에 온 것 같았다. (특히 내가 맡은 첫 사업이 온라인연수여서 더 그랬나보다.)

동물의 숲 지키미, 사실 내 닉네임은 “타시”님이 지어주신 닉네임이다.
이메일로 소통하는 것이 어느정도 익숙해졌을 때쯤, 나는 PMC의 PAO를 맡게 되었다.
계약 체결부터 착수보고, 사업 진행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모두 이메일로 소통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사업 수행 간 어떠한 이슈가 생기면 참조에 걸려 모든 이메일을 수신 받기도 한다. 심지어 RE: 가 10개이상 붙는 경우도 많이 봤다. 눈 깜빡할 사이에 오가는 이메일 속 내용을 놓치도 하거나, 분명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가 작성된 이메일을 봤었는데 어떤 이메일인지 찾기도 어려웠다. 나는 평소에 카카오톡 단톡방도 분류를 미리 해놓는다. 어떤 단톡방인지 찾기 쉽게 사진을 바꿔놓거나 키워드를 꼭 작성해서 바로 찾도록 만들어 놓는다. 하지만 이메일에서는 그저 수신 받는 이메일들은 사업 이름을 작성하지 않은 제목이라면 찾기도 참 어려웠다. 받는 이메일을 모두 분류하고, 수신자에 넣을 사람, 참조에 넣을 사람, 숨은 참조에 넣을 사람을 구분해가면서 점점 이메일을 주로 사용하는 실무자로 성장하고 있었다.
내가 신입으로 입사했을 때에는 내 바로 위 물어볼 사수가 없었다. (사실 있었긴 했다. 파견으로 내가 입사 후 5개월만에 만났다.)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실 분은 오로지 팀장님이셨고, 팀장님도 온갖 실무에 많이 시달리고 계셨었다. 그래서 업무시간 중에는 내 궁금증을 모두 말씀드리기 부담스러우실까봐 야근하실 때 살짝 가서 여쭤보거나, 혼자 이리저리 해결해보려다가 발주처에서 내부에서 해결이 되지 않냐면서 핀잔을 들은 적도 있었다. 특히, 예산관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궁금한 사항이 정말 많았다. 나의 질문은 10가지가 넘는데 그걸 업무시간에, 야근하실 때 다 여쭤보기가 너무 죄송스러웠다. 모르는게 죄인 것 같았고, 알고 싶어도 그 어디에도 친절하게 설명해준 곳이 없었다. 그러다 이메일로 요청드리면 봐주시고 시간 되실 때 답변을 주시지 않을까 싶어 나의 궁금증을 담은 질문 이메일을 팀장님께 보내드렸다. 그 이메일을 받으신 팀장님이 놀라시고 바로 회의실로 나를 데리고 가서 알려주셨다. 이렇게 궁금한 점이 많은 줄 몰랐다고, 그때 그때 물어보지 그랬냐고 하셨다.

아직 군대 물이 덜 빠져서 메일 시작할 때 너무 딱딱했었다.
내 결론은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메일을 보냈을 것 같다. 이메일로 나의 질문을 정리하면서, 나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처음으로 정확하게 알 수 있었고, 팀장님도 내가 어디까지 이해하지 못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로 물어봤다면 그 자리에서 몇 개만 묻고 끝났을 질문들이, 이메일에서는 빠짐없이 정리되어 전달되었고, 그 덕분에 나는 한 번의 설명으로 훨씬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메일은 나에게 ‘물어볼 용기’를 만들어줬다. 바쁜 시간에 말을 꺼내는 대신,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면서도 내가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이메일은 단순히 일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배우고, 관계를 만들고, 일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도구라는 것을.
회사에서 근무하다보면 여러 개의 사업들을 한번에 몰아치는 경우가 많다. 사업의 이슈들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닌 어느 한 시기에 한번에 일어날 때가 많다. 그러다보면, 전화로 합의된 내용은, 나중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카톡으로 정리된 일은, 공식적인 일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전화와 카톡으로 나눈 내용을 이메일로 정리해서 보내 항상 기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기록은 미래의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예산 전용, 예비비를 승인 받기 위해 발주처에 연락할 때 분명 전화로 이슈에 대한 이해를 공유했지만, 막상 공문으로 작성하려다보니, 그 사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던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작성해둔 중간 중간 공유했던 메일과 회의록을 근거로 공문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점점 메일을 선택하게 됐다. 급한 일은 전화로 풀되, 결정은 이메일로 남기고, 관계는 카톡으로 이어가되, 방향은 메일로 잡았다. 그게 내가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여러 사업이 동시에 돌아가는 환경에서는, ‘기억’보다 ‘기록’이 훨씬 더 강하다. 누군가는 분명히 들었고, 분명히 합의했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각자의 기억은 조금씩 달라진다. 그리고 그 차이는 결국 책임의 문제로 이어진다. 그 메일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나의 일을 지켜주는 근거가 되었고,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게 해주는 출발점이 되었다.
사실 주니어에게는 권한이 없다. 결정을 강제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이메일로 사업을 시작하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