냔런(Nhanh Lên)이는 나의 우주였다. 2019년, 쌀포대에 담긴 꼬질꼬질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나에게 왔다.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나의 말 한 마디를 기억하던 베트남 공무원이, 마침 이웃집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며 덜렁 건네주었다. 언제 파견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반려 동물을 들이지 않겠다고 결심했었지만, 냔런이는 그 결심을 단숨에 허물어뜨렸다. 아니, 냔런이는 내가 베트남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용기를 심어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파견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코로나도 버텨냈고, 허리디스크가 터졌을 때도 현지에서 수술을 받으며 이겨낼 수 있었다. 한 해 한 해 많은 성장할 수 있었고 새로운 사업과 성과를 만들어 가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베트남에 영원히 정착하게 되었다.
출장을 갔다가 두 달 만에 냔런이를 다시 만났을 때, 냔런이는 언제나 그랬듯이 내 발치로 살금살금 다가와 안아달라며 배를 보이고 누웠다. 오랜만에 만난 내 새끼를 꼬옥 껴안아 주었을 때, 나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그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냔런이는 그 다음 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언제나 내 곁에 있었기에 항상 곁에 머물 것이라는 오만한 착각 속에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맞이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으며 그 어떤 상황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시 만난 그 날 밤 아내는 냔런이가 삐지기라도 한 것처럼 훌쩍거린다고 말했다. 두 달 동안 집을 비운 아빠를 원망이라도 하는 듯, 냔런이는 내 가슴팍을 밀치고는 침대 밑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 냔런이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다음 날이었다. 냔런이는 훌쩍인다기보다 헐떡거리고 있었다. 놀란 마음에 서둘러 병원에 데려갔지만, 열도 없으니 그냥 날도 덥고 환경도 변해서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는 말만 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냔런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그 짧은 3분 거리에서 폐수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모든 것을 자책했다. 왜 좀 더 빨리 냔런이의 증세를 살펴보지 않았을까. 왜 더운 날 냔런이를 이동장에 넣어 병원에 갔을까. 왜 하필 그 병원에 데려가서 오진을 받게 했을까. 왜 냔런이를 좀 더 세밀하게 살펴봐 달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차라리 냔런이를 병원에 내려가지 않았더라면 스트레스를 덜 받고 안정되지는 않았을까. 왜 하필 이름을 냔런(Nhanh Lên, 빨리)이라고 지었을까. 혹시 이름을 뜨뜨(Từ Từ, 천천히)였거나 마이마이(Mãi Mãi, 영원히)였다면 좀 더 오래 함께할 수 있었을까.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깊은 죄책감 속으로 몰아세웠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게 자식이라는데, 나는 이제 눈에 넣을 자식이 사라져 버려서 눈이 아플 정도로 눈물을 쏟아내며 냔런이를 뒷마당에 묻어주었다.
나는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좀 더 나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냔런이를 떠나보낸 뒤 며칠을 이 부질없는 생각 속에 살았다. 아니, 사실 지금도 그렇다. 실의에 빠진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위로해 주었다. 냔런이가 아프다는 것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도, 지체 없이 병원에 데려간 것도 모두 그때의 최선이었다. 또한, 아픈 몸으로 두 달 동안 나를 기다려준 것도, 마침내 나를 만났다는 사실에 안도한 것도, 자신을 걱정해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리던 나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떠난 것도 역시 냔런이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최선의 선택이 항상 최고의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비록 당장은 위로가 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파견지에서 만난 냔런이는 내가 그곳에서 계속 살아갈 힘을 주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지 훌쩍 고양이별로 떠나버렸다. 그런 냔런이를 위해서라도 나는 다시 움직여야 한다. 내게 주어진 역할들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수많은 사업계획서, 모니터링 보고서, 예산서, 연구 보고서, 회의록. 이 모든 결과물 역시 누군가가 최선이다. 그 결과가 왜 이것밖에 되지 않느냐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당시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을 테니까. 자신을 원망하고 타인을 탓하며 누군가를 저주하는 일은 아무런 결실도 낳지 못한다.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선택과 선택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 개발현장 속에서 어느 무엇 하나 최선의 선택이지 않은 것은 없었다. 냔런이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그것을 알려주었다.
무엇보다도 냔런아, 2019년 그날 너를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어. 사랑해, 냔런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