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제안서의 투입인력 이력사항을 적으며 새삼 놀랐다. 제안분야 근무경력이 3년 3개월이라니. 봉사단 파견의 첫 발을 내딛던 게 정말 어제같은데 정신을 차리고 내 경력을 합산해보니 3년이 넘어있었다. 물론 누군가는 정신을 차려보니 10년이 넘어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개발협력 분야에 진입할 땐 6급이 없었기 때문에 5급이었고, 지금도 물론 5급이지만 어느덧 4급을 바라보는 5급이 되었다.
주니어는 언제까지 주니어일까.

이 고민을 시작한 건 약 2주 전이었다. 난 아직도 어디선가 날 소개할 때 개발협력 주니어라고 소개하고, 회사에서도 나보다 어린 사람들은 지나가는 YP들 외에는 드물다. 아직도 제안서 작성을 리드하기엔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가끔 내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의사결정을 요구할 때는 마음 속에 걱정이 앞선다.
2주 전 회사 인사팀에서 메일이 한 통 날라왔다.

승진심사라니, 당연히 좋은 마음이 앞섰지만 수반되는 걱정이 산더미였다. 대리 직급을 이제 내가 달아야 하는데 나 잘할 수 있을까? 내가 봐왔던 대리들은 그랬다. 주도적으로 제안서의 방향을 잡고 리드하며, 여러 개의 사업을 동시에 굴리면서도 거뜬해 보였다. 거기에 사원들과 YP들의 업무적, 인간적 고민까지 들어주는 어엿한 중간 관리자. 그게 내가 아는 대리라는 직급의 무게였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 대리를 달아야 한다고?
개발협력 업계에서 본인을 주니어라고 자칭할 수 있는 건 몇 년 차까지일까. KOICA 전문가 등급 5급까지? 아니면 3년차? 이제 4급을 향해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나는 그렇다면 주니어라는 타이틀을 떼어낸 걸까. 이제는 누군가에게 묻기보단 알아서 정답을 찾아 뭐든 거뜬히 해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아 두려움이 가득하다. 나는 아직도 처음 봉사단 파견을 나가던 그 시절처럼 모르는 것들이 산더미인데 말이다.
자연스럽게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최근 어떤 고민을 하며 하루하루 일하고 있었나.
씁쓸하게도 당장 닥친 제안서 마감과 눈앞에 떨어진 과업들을 쳐내기 급급했다는 사실만이 떠올랐다. 진짜 전문성에 대한 고민이나 내 커리어의 장기적인 목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기억은 희미했다.단순히 내 투입인력 이력사항에 사업들 개수를 늘리고, 어떻게든 아둥바둥 석사를 해치워서 내 연차를 2년 늘릴 수 있을까 생각했던 지난 몇 주가 떠올랐다. 어쩌면 나는, 그저 관성처럼 일하며 1급 전문가라는 막연한 종착지만을 둔 채 생각 없이 연차와 시간만 쌓아 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후회가 밀려왔다.
그 뒤로 한참을 고민했다. 나는 언제까지 주니어로 남을 것인지.
생각해 보면 불안함은 직급이 낮아서 생기는 미숙한 감정이 아닐 것이다. 4급이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을 챙기며 책임져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질 것이며 시간이 더 흘러 3급과 2급이 되면 PM의 역할이든 조직의 생존 같은 전혀 다른 차원의 막막함을 짊어져야 할 것 같다. 뭐랄까 나이를 먹어도 내 속의 나는 그대로인 것처럼 연차가 쌓이고 급수가 올라가도 결국 정답이 없는 문제들 속에서 어떻게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무게를 견디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편하지 않을까.
매번 나는 ‘지금이 한창 고생할 때지, 사업 최대한 많이 많이 하고 배울 때지’라고 생각하며 또 새로운 일거리들을 쌓아나가려고 노력한다. 어느 날 그 말을 들은 팀장급 선배가 피식 웃으며 답했었다. 자기는 팀장인 지금도 똑같이 그러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