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강을 만들고 있다. 필리핀에 산 지도 몇년째, 명색이 이 나라에 살면서 이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이 나라 음식 하나쯤은 직접 만들어 봐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평소처럼 김치찌개나 된장국 같은 걸 만들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아니다. 오늘은 현지인이 되어 보는 날이다. 그래서 시니강을 골랐다. 새콤한 국물에 새우 몇 마리, 오크라, 가지, 무. 똠양꿍에서 매운맛만 쏙 빼고 식초를 한 국자 더 끼얹은 것 같은 국인데, 필리핀 사람들은 비 오는 날이면 이게 생각난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부침개에 막걸리 같은 포지션이려나.

냄비에서 올라오는 새콤한 - 아니 시큼한 - 김을 들이마시는데, 문득 르완다가 생각났다.

따지고 보면 시작은 다 거기였다.

르완다에 가기 직전, 한국에서 탁주 만드는 법을 배워갔다. 맥주는 만들 줄 알아도 전통주는 하나도 모르던 시절이었고, 거창한 계획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술을 좋아했고, 앞으로 2 년 좀 넘게 살게 될 그 먼 곳에서도 한 잔 하고 싶었을 뿐이다. 아, 르완다 시골,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파전을 부치며 막걸리 한 잔 하고싶다는 로망도 있었지만서도. 한국 마트도, 한국 식당도 (가 보니 있더라), 당연히 막걸리도 없는 곳. 없으면 만들어 먹어야지. 그렇게 며칠 배운 어설픈 손기술 하나만 들고 비행기를 탔다.

어쨌든 술을 만들려면 누룩이 필요한데, 너무 당연하지만 르완다에 그런게 있을 리 없다. 내 누룩방은 부엌 한구석,동네 친구에게 얻어 온 종이 박스였다. 누룩을 띄우려면 먼저 쌀이 있어야 한다. 동네 시장에서 1키로에 천원 남짓 하는 쌀을 사 오면 일이 시작된다. 먼저 모래와 돌을 골라내야 한다. 이런 중노동도 없는게, 한 톨 한 톨 고르다 보면 내가 지금 술을 빚는 건지 보석을 캐는 건지 헷갈린다. 이렇게 골라낸 쌀을 불리고, 갈고, 적당히 원반 모양으로 접어 발로 꾹꾹 밟거나, 혹은 야구공 크기의 환으로 돌돌 빚는다. 그걸 지푸라기 더미에 차곡차곡 쌓고 나면 끝. 그 다음부터는 기도뿐이다. “제발, 제발 상하지만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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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를 해 본 사람은 알지만, 결국 기도메타가 답이다.

온도? 잡을 방법이 없다. 온도계도 습도계도 없다. 그냥 르완다의 온도다. 비가 오면 조금 서늘해지고, 해가 뜨면 조금 더워지고. 누룩의 운명은 전적으로 적도의 날씨와 신의 자비에 달려 있었다. 천 년 전 우리 조상님들도 이렇게 빚으셨겠거니 (아니다. 굉장히 체계적으로 빚으셨다), 하면서 마음을 비웠다. 조상님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종이 박스를 썼다는 것 정도.

이렇게 만든 술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돈 주고 사 먹는, 그 깔끔하고 새콤달콤한 막걸리 맛이 날 리가 없다. 막 걸러서 막걸리라고 하지만 내 술은 그 막 거른것도 되지 못한 애매한 도수, 당도, 질감의 음료 - 때로는 요거트 - 였다. 어떤때는 잘 익었고, 어떤때는 묘하게 시큼했다. 이제야 말하지만 맛으로 마시는 술이 아니었다. 느낌과 추억과 감성으로 마시는 술이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들 정말 맛있다고 했다. 새마을사업으로 오신 어르신들, 같이 고생하던 단원들, 심지어 영사님까지. 몇 년 동안 막걸리는 구경도 못 하시던 분들이었으니까. 타향살이 몇 년 차에 받아 든 뽀얀 막걸리 한 사발. 덕분에 가는 곳마다 반겨주시고, 챙겨주시고, 많이 얻어먹었다.

술을 만들어서 버리는 것도 없었다. 거르고 남은 지게미는 각종 과일과 향신료를 넣어 모주를 만들었고, 막걸리를 가만히 두면 쌀가루가 가라앉는데, 분리된 위의 맑은술은 열심히 마시고, 남은 쌀가루는 김치 담글 때 찹쌀풀 대신 사용했다. 이렇게 하면 감칠맛이 돌고, 살아남은 유산균도 알아서 일을 한다. 르완다 한복판에서 막걸리 부산물로 김치를 담그고 있자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지만 뭐, 김치만 맛있게 잘 뽑히면 그만이지.

누룩도 하나만 고집하지 않았다. 현지 쌀로도 띄워보고 (어차피 수입쌀은 비싸서 구하지도 못한다), 마트에서 산 퀘이커 오트밀로도 띄워봤다. 잘 된 것도 있고, 보기 좋게 망한 것도 있다. 한국에서 배워 간 기술이 르완다 부엌에서 르완다 재료를 만나, 어떻게든 굴러갔던 거다. 뭐 나중에는 도저히 수율이 안나와 한국에서 주문했지만, 그래도 술의 바탕이 되는 쌀만큼은 늘 그 땅의 것이었다.

나중엔 한국에서 누룩만 이만큼 주문했다.

나중엔 한국에서 누룩만 이만큼 주문했다.

자랑만 늘어놨으니 실패담도 하나.

새마을 사업으로 파인애플을 키우던 마을에 가서, 파인애플 와인을 가르쳐 본 적이 있다 (공교롭게 최근 빠니보틀 유튜브에 나온 그곳이다). 길에서 파인애플을 그냥 파는 것보다, 와인으로 담그면 품은 더 들어도 소득이 몇 배가 된다. 농가 입장에서는 해볼 만한 도전이고, 나야 술 빚는 일이라면 신이 나서 달려가는 사람이고. 문제는 와인이 발효 음식이라는 거다. 발효와 부패는 종이 반 장 차이도 안 날 정도로, 오염에 한없이, 매우매우 약하다. 매일 들여다보면서 주변 소독을 하고, 온도를 봐주고, 상태를 살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또 와인 효모 같은 건 당시 르완다에서 구할 수도 없어서 제빵용 이스트를 썼다. 결과는 뭐, 도수는 안 나오고, 발효되다 말고 시큼하게 상했다. 가르치러 갔다가 같이 식초를 빚고 온 셈이다. 개인적으로도 몇 번 더 시도해 봤지만 끝내 제대로 된 한 병을 못 만들었다. 아쉬웠다. 정말 아쉬웠다.

착즙기같은게 있을리 없으니 전부 손으로…

착즙기같은게 있을리 없으니 전부 손으로…

국제개발협력이라고 하면 보통 한 방향을 떠올린다. 우리가 가서, 무언가를 주고 온다. 기술을 전하고, 사업을 하고, 보고서를 쓴다. 나도 르완다에 그러려고 갔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막걸리를 나누고, 와인을 가르치고 (본업은 과학교육이지만서도). 그런데 돌아보면 이상하다. 가르친 와인은 식초가 됐는데, 정작 내 손에는 뭐가 잔뜩 들려 있다. 대사관 음식 축제에서 한국 팀에 끼어 한식을 내던 날, 나는 옆에 있던 요리 단원들과 다른 나라에서 부스를 차린 이들에게 요리를 배웠다. 고기를 굽고, 육수를 내는 법 부터 간 맞추는 법까지, 지금 내 요리의 절반은 그때 배운 거다. 현지 쌀로 누룩을 띄우고 술을 빚는 법은 사람이 아니라 그 땅이 가르쳐 줬다. 비와 해와 흙이 번갈아가며. 주러 갔다가 배워 온 게 더 많은 장사. 손해는 아니다.

그 재미를 못 잊어서, 그 뒤로도 나라를 옮길 때마다 부엌을 하나씩 거쳤다. 어느 나라에 살든 한식과 중식은 상수였고, 그 위에 현지의 음식이 변수처럼 하나씩 얹혔다. 그 나라 시장을 구경하고, 그 나라 재료를 만져보고. 그 재료로 술을 빚고, 그 나라 음식을 한두 번쯤 어설프게 따라해보고. 빈말로도 잘 만들었다고는 못하겠다. 그래도 냄비 앞에 서서 낯선 향신료 냄새를 맡고 있으면, 그 나라를 아주 조금은 더 알게 된 기분이 든다. 그 나라 사람은 끝내 못 된 이방인이지만, 그 나라 식탁에는 잠깐씩 끼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좋은 집에서 양조를 한다. 발효조도 제대로 된 걸 쓰고, 온도도 어느 정도 내 마음대로 잡는다. 에어컨을 빵빵 틀면서. 종이 박스에 대고 기도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상상도 못할정도로 출세한 셈이지. 야생에서 구르던 가락이 있으니 웬만한 환경은 다 호사스럽다. 그리고 그 출세한 양조가는, 요리사는 오늘도 이방인의 부엌에서 이 나라의 음식을 하나 배웠다. 내일은 또 어떤 대륙, 어떤 나라의 부엌에 서 있을지 모른다. 뭐 어디로 가든, 거기엔 부엌이 있고, 시장이 있고, 배울 게 있고, 아마도 술도 계속 만들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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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고백하자면, 음식을 배운다고 거창하게 말하지만 사실 시니강을 끓이는 진짜 이유는 어젯밤 술이 과해서다. 정말, 생각보다 해장으로 매우 좋다. 그리고 국물 맛은 어느 유명 식품회사가 냈다. 누룩까지 손으로 띄우던 놈이 이런 인공조미료에 의존하다니 싶지만, 필리핀 사람들도 다 가루 쓴다. 아마도.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은 그랬다. 그러니 이것도 엄연히 현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