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탱커레이

해외 파견이 결정되고 이민 가방에 짐을 쌀 때의 설렘과 두려움이 기억난다.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까? 빨리 현장을 방문하고 싶은 기대와 동시에 한국과는 아주 다를 낯선 환경에서의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했다.라는 것이 아주 일반적인 처음 해외에 파견되는 자의 마음이겠지만 나의 경우 이상하리만큼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보통의 경우(일반적이라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만나왔고 보아왔던 99%의 해외에 처음 파견된 이들은 그러했다) 개발 도상국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걱정이 많아 생필품 및 식료품 구매에 대한 문제나 해충 문제, 물과 전기 사용에 대한 상황을 궁금해하고 그에 따라 짐도 꾸리게 된다. 어떤 이는 한국어 활자가 그리울 것이라며 책을, 어떤 이는 슬기로운 여가 생활을 위한 드라마와 영화가 가득 담긴 외장하드를, 토종 한국 입맛인 이들은 한국 식료품을, 민감한 이들은 본인이 사용하던 스킨케어 제품, 치약, 샴푸부터 각종 생활용품을, 여성의 경우엔 생리대를, 심지어는 샤워 필터를 챙겨가는 사람도 보았다. 모두 자신의 삶에서 중요히 여기는 부분을 가방에 차곡차곡 넣었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물건은 바로 옷과 메이크업 제품이었다. 뒤늦게 외모 가꾸기에 빠져 화장과 예쁜 옷을 입는 것에 심취해 있던 나는 옷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파견 나갈 때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집에서 잠잘 때 입는 다 해져가는 옷을 가져가서 귀국 시 옷을 버려 짐을 줄이라는 것이었다. 현지에서 좋은 옷을 입을 필요도 없거니와 안 그래도 외국인 신분으로 눈에 띄는데 옷까지 튀면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쉬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현지도 사람 사는 곳이고 내가 앞으로 생활해야 하는 삶의 터전이 되는데 다 해진 옷을 대충 입고 다니고 싶지 않았다. 나는 좋아하는 옷을 한가득 집어넣었다. 23kg의 가방엔 21kg의 옷과 1kg의 화장품, 자질구레한 생활용품이 1kg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수화물 추가를 해준다고 했지만, 나에겐 필요가 없었다. 옷과 화장품을 제외하곤 내게 필요한 것이 없었다. ‘현지에 있는 것 쓰면 되지 뭘~’ 하는 생각으로 이민 가방 1개와 노트북과 지갑 따위의 물품이 든 배낭 1개를 짊어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주중 사무실에 출근할 때엔 간단한 출근용 화장을 하고 캐주얼 정장을 차려입었다. 현지 직원들과 한국인 선임은 나에게 얼마 못 갈 것이라 했다. 도시에 사업장이 있는 경우는 좀 다르겠지만, 시골 사업장에 파견된 경우 보통 냉장고 바지에 반팔 티셔츠, 운동화(여기서 더 편해지면 슬리퍼)를 신고 출근한다고 한다. 너도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난 절대 그러지 않을 거야.’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지만 파견 기간 동안 냉장고 바지에 반팔을 입고 출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냉장고 바지에 반팔, 슬리퍼를 신고 출근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내가 그렇게 갖추어 입고 출근하고 싶었을 뿐이다. 개발도상국, 그것도 시골 마을에서 옷을 갖추어 입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근무 환경이었지만(물론 슬리퍼에 냉장고 바지 입는 한국인들에 대해 현지 직원들이 지적을 하곤 했지만 그냥 웃고 넘어가는 정도였지 크게 관여하지도 않았다.)

나는 갖춰 입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주말엔 숨겨왔던 욕구가 표출되었다. 나는 도시에 풀 메이크업과 짧은 치마를 입고 놀러 나갔다. 출근용 화장과 풀 메이크업이 뭐가 다르냐고 물어본다면 출근용 화장은 파운데이션, 눈썹, 립스틱, 옅은 눈 화장 정도이고 풀 메이크업은 출근용 화장이 기본이 되어 더 짙고 화려해지는 느낌이다. 아무튼 그렇게 꾸미고 가서 뭘 했나 싶겠지만 고작 버스 타고 시내 구경하기, 골목 구석구석 걷기, 로컬 음식을 먹었을 뿐이다. 남들이 책을 읽고 영화나 예능 드라마를 보며 현지 생활의 고단함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에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던 것이었다.

8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파운데이션은커녕 선크림 하나 겨우 바르고 통 넓은 옷과 바지를 대충 걸쳐 입고 돌아다닌다. 그때 입었던 옷을 다시 입어보면 어우 어떻게 입었나 싶다. 짧거나 몸에 딱 달라붙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그 23kg의 안에는 내 젊음과 청춘이 들어있었다. 어느 누가 보면 하나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내가 좋아했던 옷을 가득 챙겼던 그때의 내가 너무나 기특하다. 개발협력한다고 개발도상국 간다고 그 예쁜 20대 청춘을 좋아하는 옷도 못 입고 나를 꾸미지 못해봤으면 세월이 지난 지금 뭐가 남아 있었을까. 그때의 감정에 충실하게 지냈기에 고된 현지 생활에 나가떨어지지 않고 여태껏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전세계적인 바이러스 위기로 지금의 청춘들과 처음 해외 파견을 가는 그 설렘과 두려움을 공유하지 못해 너무나 아쉽고 당신의 23kg엔 무엇이 들어 갈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