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부산글로벌교류재단에서 개최한 '2024 B-ODA 밋업데이(Meet-up day)'에 참석했다. B-ODA 밋업데이는 지역 내 국제개발협력에 관심있는 다양한 사람과 기관이 모이는 네트워킹 행사로, 청년 오픈토크 세션, 1:1 ODA 전문가 컨설팅, 부스 행사 등 다채로운 세션으로 구성되었다. 공적인사적모임에서는 핑키님과 내가 초청을 받았고, 그 중에서도 ODA 대담회 '청년이 말하고 청년이 듣는다' 세션에 대담자로 참석해서, 청년 ODA 커리어에 대한 나의 경험과 의견을 건넬 기회가 주어졌다.

항구 근처 힙한 분위기의 행사장에 도착해보니, 동서대, 부경대, 부산외대 등 부산 지역 대학교들의 국제개발협력 동아리들이 부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내가 대학생 시절에는 국제개발협력 동아리라는 것은 없었던 것 같은데. 나름 국제학 전공자인데도, 동기와 선후배를 모두 통틀어서 우리 과에서 개발협력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부산 지역에 개발협력에 관심있는 대학생들이 많구나. 속으로 꽤나 놀랐다.
행사가 마무리 되어갈 무렵, 내 차례가 되어 무대에 섰다. 부산외대 동아리 회장님이 질문하고 내가 답하는 대담 형식의 코너. 미리 준비된 사전 질문은 대부분 "개발협력 컨설턴트"라는 업에 대한 것으로, 아무래도 대중들에게는 낯설 직업이라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질문은 따로 있었다. 앞으로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청년 및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에 대한 질문. 글쎄, 도대체 뭐라고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까. 매번 고민해도 가장 어려운 질문이 튀어나왔다.
아주 가끔씩 나의 첫번째 이력서를 읽어본다. 대학교 졸업 전 ODA 인턴(현재는 YP라 불리지만 당시엔 ODA 인턴이었다.)에 지원하며 제출했던 이력서. 그럴싸한 대외활동 경력이나 수상 실적 하나 없는, 학생회 활동과 봉사활동 찔끔 적어둔 것 말고는 텅텅 빈 이력서. 얼마나 쓸 것이 없었는지, 글씨 크기도 크고, 페이지 위아래의 공백도 상당하다. 최근 몇 년 간 인턴 면접을 많이 봤지만, 그때의 내 이력서로는 지금 어떤 곳에서도 YP 합격을 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서류에서 광탈(광속 탈락)해서 면접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리라. 그래도 그 때는 컨설팅 기업 하나, NGO 하나에서 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었던 때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더 많이 준비하고, 더 많이 노력한다. 인턴 지원서를 받을 때마다 꽉꽉 들어찬 이력서에 놀랄 정도다. 그런데도 개발협력 일자리는 구하기 점점 더 쉽지 않다. "노동환경이 좋은" 개발협력 일자리는 더욱 없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의" 개발협력 일자리는 더더욱 없다.
올해 국제개발협력 종합시행계획(2024.1)을 살펴보면 '전문인력 양성 및 활용'에 대한 계획이 있다. '청년들의 해외 일/경험 기회 확대를 통해 글로벌 마인드를 키우고 지역별 또는 국제기구 개발협력 전문가로의 성장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이는 2022년 발표한 'ODA 전문인력 양성 및 활용 확대 방안'의 이행과도 연계되어 있어, 우리나라 정부 나름대로는 청년 ODA 일자리 확대에 대한 관심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방향성은 좋다. 그런데 양적 확대 뿐 아니라, 불안정한 노동환경과 여전히 서울에만 존재하는 국제개발협력 일자리의 문제는 언제쯤 수면 위에 떠오를 수 있을까.

다시 B-ODA 행사로 돌아가서, 내가 미리 적어둔 스크립트에는 청년들에게 다양한 실패 경험을 해보시라는 진부한 조언이 있었다. 실제로 우리 업에서는 책상 앞에서 배운 이론보다 한번이라도 발로 뛰고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 더 귀하게 쓰이기도 하기 때문에, 진부하기는 해도 유효한 조언이기는 하다. 하지만 업계에서 나름 10년이나 굴러먹은 사람으로서, 청년들에게 그 말만 건네는 것이 참 부끄러웠다. 그들이 경험을 많이 한다고, 일자리를 더 잘 찾을 수 있을까. 결국은 조언만 담백하게 건네지 못하고, 선배로서 미안한 감정과 책임감을 느낀다는 사족까지 덧붙여가며 세션을 마쳤다. 오랜만의 부산 나들이도, 활기찬 에너지의 대학생들과의 조우도 행복했지만,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생각과 한숨이 많았던 하루로 기억한다.
청년들이 아무리 관심을 갖고 지식을 쌓고 경험을 채우면 뭐하나. 결국은 하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수도권에서 자리를 잡겠다고 상경해야 한다. 노동 강도 대비 적은 보수를 받으며 계약 만료 전까지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마저도 일할 기회가 없어 봉사활동으로 경력을 쌓으려 하고, 남들은 다 있는데 나만 없는 것 같은 석사를 따러 무리해서 떠난다. 이미 청년들은 충분한 관심을, 어쩌면 너무 과하다 싶은 지식과 경험을 쌓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청년들에게 얼마나 더 애쓰라고, 더 열심히 하라고 조언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이제 청년들에게는 해 줄 말이 마땅치 않다. 조언이 필요한 곳은 청년이 아니라 우리 업계의 생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