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핑키

이 글이 나가는 8월 1일. 2020년 8월 첫 호를 발행한 김칩 뉴스레터가 어느덧 만 3년을 맞이하는 달의 시작이다. (김칩 1호 보기: https://stib.ee/6yM2). 처음에 ‘딱 10번만 발행해 보자'고 시작한 뉴스레터는 특별호를 포함해서 160여 회 넘게 발행했고, 공적인사적모임의 멤버도 4명에서 40여 명으로 늘어났다.

되돌아보면 뉴스레터를 발행하기 위해 자연스레 다양한 자료를 만났다. 영문 자료를 사업계획서를 쓸 때만 들춰보고 넘어가는 것이 아까워서 뉴스레터로 많은 이들과 나눠야겠다고 시작했는데 내용을 설명하려면 각종 영문 기사나 영상도 함께 봐야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세계 각지의 다양한 뉴스를 확인했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하려다 스스로가 더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

뉴스레터 덕분에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공사모 멤버들을 포함하여 뉴스레터 구독자, 공사모의 지지자, 개발협력 블로그 운영자, 온에어에 홍보 자료를 제보하는 이들 등 언급하지 못한 그 외 수많은 이들을 뉴스레터가 아니었으면 만나거나 이름 한 번 들어보지도 못할 뻔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리가 운영하는 매체에 활자를 얹혔으니 옷깃 인연보다는 진한 인연일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에게 업계의 이야기를 다루는 매체를 시작할 용기를 낸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공부를 하고 인연을 맺게 됨에 감사할 따름이다.

위에서 용기라는 단어를 썼다. 실제로 용기를 냈기 때문인데, 업계 사람들에게 업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부담이 큰 결정이었다. 개인적으로 매주 정치시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수만 명에게 기후환경, 국제 이슈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데 시청자의 다수가 주로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일반 시민이기 때문에 보다 마음 편하게 기후 시민, 지구 시민을 늘린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반면, 김칩의 경우는 나를 직접 아는 사람을 포함하여 좁디 좁은 국개협 분야의 종사자들이 주요 독자이다 보니 주제 선정부터 표현, 난이도, 중립성, 운동성 등 고려할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하나라도 잘못 조절하면 나의 커리어에 칼날로 돌아올까봐 하는 걱정이 꽤 컸다. 그래서 아직도 1호를 발행한 날을 잊지 못한다. 지금 보면 조악하고 귀염뽀짝한 1호지만, ‘아 괜히 뉴스레터 하자고 했나…’, ‘일은 왜 벌려갖고 아오…’하며 세상 걱정, 부담, 우려를 혼자 다 안고 손을 벌벌 떨며 뉴스레터 ‘발행하기' 버튼을 클릭했던 그 때. 뉴스레터 발송 시간인 9시보다 한참 전에 일어나서 뉴스레터가 메일함에 잘 도착하는지, 독자들이 오픈하는지, 피드백은 들어오는지를 떨리는 마음으로 왠 종일 지켜봤던 그날이 아직 생생하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독자들이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보내준 덕분에 용기를 계속 낼 수 있었고, 덕분에 훨씬 많은 이들과 국제개발협력 이야기를 3년 째 나누게 되었다.

                                                   김칩 1호 독자 피드백

코로나가 지구촌을 덮쳤던 2020년은 대다수에게 힘든 한 해였고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2019년 퇴사 후 호기롭게 소셜벤처 창업과 국제개발협력 프리랜서 활동가의 길을 선택했는데 1년 만에 역병으로 인해 일을 못 하게 되었다. 창업 아이템이던 빗물로 만든 크래프트 맥주는 스케일업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재택근무, 영업 제한 시간, 시민들의 가볍고 불안정해진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접을 수밖에 없었고, 프리랜서로서 처음 시작한 국개협 프로젝트는 하늘길이 막히며 자연스럽게 중단, 조기종료 되었다. 돌발상황의 쿠션이 되어줄 조직조차 없어 역병의 습격을 온몸으로 맞닥뜨린 당시의 나는 상당히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다시 조직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었고, 1인 가구로서 감당해야 하는 고정지출과 대출금의 압박은 점점 강도가 심해졌다. 돈을 벌어야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선택지는 많지 않았고, 돈을 벌기 위해 쿠팡맨과 타다 드라이버를 지원했지만, 이 자리들도 지원자가 몰리면서 내겐 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나만의 꿈을 안고 국제개발협력이라는 것을 선택하여 나의 길을 걸어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서 길이 뚝 하고 끊어졌다. 절망스러웠고 두려웠다. 언제 끝날지 모를 역병 상황 속에서 ‘여기까지인건가…?’싶은 공포감이 엄습했다. 꿈이 꺾일 것만 같아서, 많이 무서웠다.

좌절의 순간을 맛보던 당시 시작한 것이 책모임이었다. 이후 뉴스레터를 시작한 모태가 된 모임인데, 당시 팬데믹으로 인해 경력이 애매해진 전 직장 동료 4명이 모여 5명 이상은 모일 수 없던 시절에 모여 시작했다. 사실 술모임으로 시작했는데 매주, 격주마다 술만 마시기가 조금 헛헛하여 책을 갖다 붙였다. 4명 모두 이 모임을 꽤 좋아했다. 영업 제한 시간이 밤 9시던 당시, 저녁 6시에 만나서 한참 떠들다 보면 금방 9시가 되는게 아쉬워서 집결시간을 3시로 당기고, 그것도 좀 떠들만 하면 9시가 되어버려 다음 약속은 1시로, 그것도 또 아쉬워서 오전 11시로 당기고, 그럼에도 여지없이 밤 9시까지 꽉 채워 떠들고 아쉬워하며 술집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던 것을 생각해보면 좋아했음에 틀림없다. 책이야기, 전 직장 이야기, 국개협 이야기, 그 외의 잡다한 공적이며 사적인 이야기를 끝도 없이 나누던 그 시간 덕분에 좌절의 아픔을 잊을 수 있었다. 비슷한 아픔과 고민을 가진 이들이 모인 덕분에 어려움을 공유하고, 탈출구를 함께 모색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함께 책 읽고 수다 떤 내용을 바탕으로 뉴스레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공적인사적모임'이라고 이름 붙인 커뮤니티 덕분에 일 대신 활동으로 국제개발협력 커리어를 이어가게 되었고, 덕분에 아픔이 길이 될 수 있었다.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오래 일하기는 어렵다. ODA 예산이 유례없이 폭증하고 있지만 그런 흐름이 일하는 이의 삶의 질까지 닿을 거라는 기대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렵다. 피라미드의 꼭대기만 살아남는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 구조를 빼다박은 국내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질서에서 다양성, 상생, 공존의 키워드를 찾기는 어렵다. 중간 역할을 해야 하는 업계  5~10년 차 상당수가 빠져나가며 허리는 얇아질 대로 얇아졌고, 상태는 해결되지 않고 악화되어 얇디얇은 허리는 허리는 이제 길어질 대로 길어졌다. 순환 구조가 아닌 선형 구조로 형성되어 사람이 돌지 않고 자꾸 업계를 떠나는 이 분야가 가진 문제를 그동안 수많은 이들이 제기해왔지만, 해결책으로 나오는 것은 임시직, 인턴자리 같은 임시방편 위주이지 사람이 떠난다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까지는 제대로 논의된 바가 없다. 팬데믹은 3년만에 종료되었지만,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일하는 사람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문화로 개선될 시기가 언제일지는 미지수다. 그럼 이 문제를 누군가 해결해 주길 바라며 기다려야 할까?

공적인사적모임은 ‘청년들이 재미있게 활동하는 국제개발협력 생태계를 조성하자'는 비전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비전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활동에 동조하는 이들이 모이며 공통의 비전을 설정하여 내가 일하는 분야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발, 두 발 공사모의 방식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이렇게 조금씩 가다 보면 조금은 빨리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누구라도 지금 내가 처한 환경이 조금 어렵다면 옆에 의지할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작은 변화의 씨앗을 키워보면 어떨까. 그러면 조금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바꿀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