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 스타일은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여행지에 간 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다니는 식이다. 헐거운 계획이라도 있어야 여행지까지 가는 동안 마음이 편하달까. 나는 여행지를 고를 때 세 가지가 있는 곳을 간다. 그 세 가지는 바로 로컬 브루어리생태 문화적 공간 그리고 역사가 있는 곳이다.

'맥덕(맥주 덕후)'이니 어디 가서 맥주를 찾는 건 당연한데, 그중 로컬 브루어리를 꼭 가는 이유는 지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얼마나 맛있는 맥주를 먹나~?’를 넘어 언제부터 브루어리를 운영한 건지, 이 맛있는 맥주와 안주의 원재료가 지역산인지 아닌지, 주요 고객층은 누구이며 그들은 왜 이 시간에 일을 안 하고 여기 있는 건지 등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지역의 정치·문화적 배경을 알 수 있어 이 지역과 한 걸음 친해지는 느낌이 든다. 생태 문화적 공간은 풀냄새가 주는 편안함과 동시에 ’느려도 된다’라는 안도감이 들어 꼭 찾게 된다. 물론 거기까지 노트북을 들고 간다면 산통 깨지지만.

부산에 있는 핑키의 최애 국내 브루어리. 맥주 맛은 물론이고 지역과의 스킨십이 좋다.

부산에 있는 핑키의 최애 국내 브루어리. 맥주 맛은 물론이고 지역과의 스킨십이 좋다.

지역의 역사적 맥락을 알아보는 것 역시 여행을 즐기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난 역사 중에서도 특히 **다크투어리즘(이하 '다크투어')***에 마음이 동하는 편이다. 제주에 가게 되면 4.3을 기억하는 장소에 들르고, 광주에 가게 되면 국립 5·18 민주 묘지를 방문하며, 중국에 가게 가면 임시정부나 독립운동가 묘지를 찾는 등이다.

E.H. 카에게 역사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면 내게 다크투어는 현재와 과거의 가식 없는 대화다.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공간에서는 그 영광의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이 눈물 흘린 맥락을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다크투어는 누군가가 흘린 피눈물의 흔적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싸움 구경에서 가장 궁금한 ‘누가 먼저 때렸는지,'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피해자의 시각에서 낱낱이 명증한다. 때린 사람이야 잊어버리고 말지만, 맞은 사람은 블록체인처럼 기억하니까.

국립5·18 민주묘지 앞에서

국립5·18 민주묘지 앞에서

베트남 파견 당시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역사적 현장을 여기저기 다녔다. 베트남 전쟁의 역사적 함의에 흥미가 있어 예전부터 책이나 영상을 기웃거린 덕에 파견되자마자 시간이 날 때마다 베트남 전쟁 다크투어를 다녔다. 마침 살던 곳이 미군이 고엽제를 가장 많이 살포한 베트남의 옛 DMZ 근처여서 전쟁 당시 사용한 지하터널(빈목 터널)이나 지금은 커피농장이 된 옛 미군 공군기지, 고엽제로 오염된 토지를 자주 탐방했다. 다른 지역으로 여행 갈 땐, 전쟁 역사관, 전쟁 희생자 위령비를 다니며 현재도 베트남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베트남 전쟁을 이해해보려 했다. 특히 여전히 고엽제(Agent Orange)가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장에 가면 마치 베트남 전쟁이 아직도 계속되는 듯하다. 그 피해자들과 유전병을 안고 다음 세대들은 장애와 가난을 안고 여전히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었으며 고엽제에 심하게 오염된 땅은 여전히 생명이 자라지 못한다.

비엣젯 항공이 착륙할 때 기내에서 흘러나오는 베트남 국민 노래 ‘Hello Vietnam(듣기)’에는 All I know of you is all the sights of war / A film by Coppola, the helicopter’s roar / One day I’ll touch your soil이라는 노랫말이 있다. 그중 touch your soil 가사가 등장하는 구간은 조국이 안은 상처가 아물길 바라는 간절한 손길이 고엽제에 오염된 땅을 살포시 어루만지는 듯하다.

베트남 국민 노래 'Hello Vietnam' (출처: Hợp Âm Việt)

베트남 국민 노래 'Hello Vietnam' (출처: Hợp Âm Việt)

얼마 전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군이 베트남 파병 당시 저지른 민간인 학살 피해를 배상하라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1심 판결에 항소했다. 지금까지 현 정부는 국군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으며, 게릴라전으로 진행된 베트남 전쟁 특성상 민간인과 베트콩 군인을 구분할 수 없어 발생한 정당행위였음을 주장해왔다. 소를 제기한 사람 중 8살 때 한국군의 집단 살해에 의해 본인은 옆구리에 총상을 당하고 가족 5명을 잃은 학살 피해자는 여전히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만난 현지의 고엽제 피해자들처럼 말이다.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방법은 진심 어린 사과, 진상규명 그리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배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 역시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처럼 이 세 가지가 여전히 요원하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자신이 당한 짓을 다른 데에서 '복붙(복사 붙여넣기)'하는 이 세상은 온통 요지경 속이다. 참고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지역 중 하나는 꽝남성 디엔반현에 위치한 퐁니, 퐁녓 마을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여행가는 다낭에서 호이안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다.

베트남 학살 피해자에게 '피해자 행세'를 멈추라는 고엽제전우회의 집회 현장 (출처: 프레시안)

베트남 학살 피해자에게 '피해자 행세'를 멈추라는 고엽제전우회의 집회 현장 (출처: 프레시안)

4월은 제주 4·3, 화성 4.15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 아홉 번째를 맞이한 세월호의 4월 16일, 내일로 다가온 4·19혁명 기념일이 있는 달이다. 국내의 수많은 전쟁 같은 삶이 일 년에 한 번 수면 위로 떠오르는 달이자 다크투어하기 딱 좋은 시기다. '**연대의 시작은 주변에 관심을 두는 것부터'**라는 말이 있다. 혹자는 국제개발협력과 국내 사회적 이슈를 별개의 것으로 보는데, 난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내나 해외나 인간군상이 저지르는 전쟁 범죄, 성폭력, 비리와 부정부패, 착취와 차별과 같은 따위의 것들은 껍데기만 다를 뿐 그 구조는 대부분 비슷한 패턴이다. 그러므로, 국내의 문제를 보는 눈을 키우면 현지에 나가서도 보이는 것이 많다. 우리는 그것을 통찰이라 부른다.

수많은 이들의 끝나지 않는 징글징글한 전쟁 같은 삶을 끝내는 첫걸음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그런 면에서 4월은 세상에 눈을 뜨기에 꽤 괜찮은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