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중학교 때 집안이 크게 기우는 바람에 어린 시절부터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그 중 시급이 괜찮은 축에 속했던 프린터 공장, 자동차 부품 공장, 핸드폰 액정 공장 등은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공간이었다. 그곳에선 그간 본 적 없던 다양한 광경을 보았다. 단순히 기계 돌아가는 소음이나 땀 흘리는 풍경이 아니었다. 지겨운 일과를 게임이나 축구얘기, 뒷담화 정도의 대화로 채우며 힘들게 잔업을 하고, 퇴근길마다 술집으로 향하고, 월급날마다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며 흥청망청 사라지는 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울 수 없는 ‘사회적 패배감’이 드리워진 무수한 얼굴들. 섬처럼 철저히 고립된 채 버티던 그들의 켜켜히 쌓인 무력감은 1년, 2년이 지나 어느 순간 분노로 그리고 극우적 언어로 변해갔다.

많은 이들은 그것을 “개인 책임”이라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게 다일까.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내가 본 각자도생은 선택이라기보다 개천에서 난 용이 되지 못하면 ‘패배한 삶’이라는 사회적 구조에 의해 형성된 생존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풍경은 공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사회 곳곳에 서있는 곳만 다를 뿐 같은 얼굴을 한 고립이 널려있다.

요즘 유행하는 방식의 사회혁신은 흔히 드러난 ‘약자’, ‘취약계층’을 향한다.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다수, 고립되고 고사되는 평범한 삶도 충분히 다뤄지고 있는가. 겉으론 괜찮아 보여도 사실상 취약한 삶이 산적한 현장에는 혁신가도, 운동가도 없다. 나는 공장에서 만났던 ‘평범한 삶’을 사는 고립된 얼굴들을 잊지 못한다.

나 역시 장애를 다루는 봉사단을 만들며 소셜 섹터에 발을 들었지만, 눈에 띄고 해결하고 싶은 문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다수, 고립되고 고사되는 평범한 삶’이다. 이 변화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발을 들이며 선명해졌다. 이 분야는 ‘저 너머 타인의 취약한 삶이나 북극곰’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작 그 삶을 걱정하며 애쓰는 동료들의 노동은 너무 자주 소외된다. 더 심각한 건 청년 종사자들이 모든 어려움을 자기 탓으로 돌린다는 점이다. 나는 여기서 공장 노동자들과 똑같은 패턴을 발견했다. 행복하지 않은 삶을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 각자도생 일변도의 구조, 그리고 그 속에서 점점 고립되어가는 사람들. 애초에 ‘우리’라는 감각 자체가 부재하다. 공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국제개발협력 동료들 모두 같은 외로움에 갇혀 있었다.

이 문제의식은 결국 나를 공사모로 이끌었다. “사적인 느슨한 연대로 공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슬로건으로 시작한 이제 60명이 함께하는 이 공동체는 인건비를 주지 않고 오히려 회비를 내지만, 사람들이 모였다. 뉴스레터를 만들고, 일자리 환경 개선 활동을 하고, 빈곤포르노 근절을 위해 목소리를 낸다. 바쁜 일상을 쪼개가며 함께 무언가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멤버들은 “혼자였다면 포기했을 어려움을 동료들과 함께 헤쳐나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힘든 일이 생기면 서로 위로하고, 기회가 오면 함께 나눈다. 보통 우리는 돈을 원하지만 진짜로 원하는 것은 내가 쓸모 있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 혼자가 아니라는 안전감, 충분히 애쓰고 있고 이대로 살아도 된다는 위로와 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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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자주 인용하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마을’이 필요하지 않을까. 공사모는 신뢰와 연대, 작은 변화부터 만들어가는 힘, 곧 사회적 자본이 가득한 ‘마을’이다. 멤버들은 문제를 발견하는 법, 동료와 연대하는 법, 혼자가 아니라는 것의 힘을 익히고 있다. 그리고 이 감각은 각자의 삶터로 돌아가서도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씨앗이 되고 있다. 나아가 동료들이 “내가 이 사회에서 조금 더 잘 쓰이고 있구나”라는 효능감을 느끼길 바란다.

김칩 6년의 여정을 돌아보면 우리가 만들어온 것은 단순한 뉴스레터가 아니라 새로운 관계 맺기의 실험이었다. 각자도생에서 공존공생으로 나아가는 작은 씨앗이었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 공사모 덕분에 확인한 진리다. 우리가 지금껏 쌓아왔고 쌓아갈 신뢰와 우정이, 국제개발협력 일을 하고 싶은 모든 이가 자신이 가재든, 붕어든, 개구리로 살아도 되는, 개천에서 난 용이 되지 않아도 되는, 그 개천 자체가 살기 괜찮은, 생태계로 진화하여 모두가 좋은 환경에서 쓸모 있음을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사모의 신뢰와 우정이 더욱 잘 쓰여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