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은 나에게 기이한 해였다. 국제기구라면 UN 정도만 있는 줄 알았던 내가 국제통화기금인 IMF를 알게 되었고, 한국 경제가 무너졌다는 뉴스가 연신 쏟아졌다. 새천년이 다가온다고 하는데 Y2K니 지구 종말이니 어디에도 희망은 없어 보였다. 그런 감상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홍대 라이브 클럽가에서는 유독 청춘을 울부짖는 노래들이 많았는데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하고 ‘맨땅에 헤딩’하겠다는 노래가 있었다. 지금은 그 밴드의 브레인이었던 멤버가 떠나버린 지 오래라서 사실상 노브레인 상태이긴 하지만, ‘난잡한 굉음 속에 녹아들어’ 보겠다는 그들은 어린 나에게 청춘의 낭만보다는 청춘의 반항심을 먼저 일러주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땀과 습기로 가득 찼던 작은 지하철 클럽가이다.
98이라는 숫자는 너무나 불완하고 불온하다.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는다고 하지만 98도로도 물은 이미 충분히 뜨겁다. 두 자리 숫자 중 최고는 99이기에 98은 어쩐지 이인자 같은 느낌도 든다. 잘은 모르겠지만 조만간 100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 자체만으로도 모자랄 것도 없는데 100이 되지 못한 까닭에 부족해 보이기도 하다. 그런 98은 확실히 청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완전하다고 하기에는 채워지지 않은,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지만 삐딱하게 거부하고 있는 것 같은. 단순히 1998년에 발표된 노래이기 때문이 아닌, 98이라는 숫자의 의미까지 담고 있을 때 비로소 <청춘 98>은 완성이 된다. 이번 김치앤칩스 98호 원고에 청춘의 반항심을 담아서 이 원고를 보낸다.
국제개발협력은 계속 부딪히는 일이다. 주어진 현실에 만족해버리면 개발도 협력도 일어나지 않는다. 문제 상황을 찾아 다녀야 하고 때로는 외면하고 싶은 사실을 들춰내야 하기도 한다. 사업 수요를 찾기 위해서 현장을 답사했을 때 “너희만 가만히 있으면 우리는 평소대로 행복하게 사는데 왜 자꾸 이런 걸 물어보느냐”는 질문에,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정말로 이 지역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하는 일일까 반문해보기도 하였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다면서, 불편한 진실에 눈을 떠버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다시금 나는 청춘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단어 끝에 매달려 있는 반항심이라는 단어까지. 부조리한 걸 알아버렸으니까 어쩌겠어요, 싸워야죠.
국제개발협력이라는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이 나에게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좋은데 왜 그걸 해외에서 하고 있냐?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때는 나도 어리숙해서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에게 내 진심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보통 저런 질문은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들이나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제는 말을 섞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이 일을 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만큼은 찾아야만 했는데, 나는 그 이유를 alt+f4에서 찾았다. 우리나라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인터넷 창만 꺼버리면 내 앞에서 바로 사라진다는 것. 아무리 심각한 국제 문제라도 인터넷을 통해서 접하게 되면, alt+f4만 눌러버리면 없어져 버리는 것이 허망했다. 방금 내가 본 것은 뭐였을까? 나는 왜 이 일에서 멀어졌나? 나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일이 되는 것일까? 그럴 리 없다. 알아버렸으니까 어쩔 수 없다. 싸워야 한다.

싸우지말고 잘 좀 해봅시다.
나는 김치앤칩스가 우리나라 국제개발협력업계에 그런 존재가 되길 바란다. 계속해서 불편한 일들을 찾아서 우리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청춘들을 이 싸움터로 불러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의 ODA 정책이나 연구 결과에도 계속해서 날 선 목소리를 내주기를 바란다. 아마도 김치앤칩스가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몸을 사리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는 사람이라고 적당히 봐주면서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더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춘과 함께할 친구란 저항과 분노, 반항심뿐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많은 불편함을 소개하고, 그래서 더 많은 청춘들이 뛰쳐나올 수 있도록. 그렇게 98이 100이 되지 않고 영원히 98인 채로 머물렀으면 좋겠지만, 1주 뒤에는 99호가 나오겠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