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지 호텔 방 책상은 대개 비슷하다. 닳아가는 백열등 조명, 묘하게 허리가 아픈 의자, 라벨 없는 물 두 병, 안 열리는 서랍 하나 (아마 성경책이 들어있을). 그리고 노트북을 켜면 늘 비슷한 것들이 뜬다. 답장을 재촉하는 메일, 어제 끝났어야 하는 검토본, 굳이 지금 해야 하나 싶은 회의 초대, 그리고 누군가가 정성껏 만든 기관 소개자료. 거기엔 늘 비슷한 사진이 들어간다. 환하게 웃는 사람들, 현장 방문, 악수, 원탁회의, 공동체, 회복력, 지속가능성, 뭐 그런 것들.

나도 한때는 그런 브로슈어를 꽤 진지하게 읽던 사람이었다. 아주 오래 전은 아니다. 학부 때였나 (아 이럼 꽤나 오래전인데), 대학원 때였나. 뭐 그 시절은 다 비슷하지 싶다. 밤 늦게까지 케이스 스터디를 읽고, 이름도 제대로 발음 못 하는 나라의 보건 인력 이야기에 밑줄 긋고, 이게 소명인지, 진심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인지, 아니면 대기업에 들어가면 영혼이 안에서부터 조금씩 비어버릴 것 같아서 도망치고 있는 건지 분간도 못 한 채 괜히 마음만 부풀던 시절. 다들 자기가 세상을 좀 안다고 착각할 때다. 나도 그랬다.

그때 머릿속엔 이미 이 커리어의 한 버전이 있었다. 붉은 흙먼지, 무거운 대화, 낯선 언어, 그리고 형광등 켜진 세미나실에서 로그프레임이 4x4냐 4x5냐로 토론하는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멋있고, 조금 더 단단하고, 무엇보다 훨씬 더 목적이 분명한 나. 지금 보면 좀 많이 웃기다. 그런데 그땐 그게 꽤 절박했다.

그러다 졸업을 한다. 지원을 한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커버레터를 열한 번쯤 고쳐 쓰고, 또 기다린다. 면접을 보고, 떨어지고, 또 지원한다. 이 바닥에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한번쯤 - 또는 수십번 - 겪는 통과의례다. 참 쓸데없이 길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정말 어쩌다 보니, 꿈에 그리던 직장에 들어가게 된다.

내 경우 그 순간은 딜리의 한 강의실이었다. 스무 명 남짓 되는 간호사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적도라고 하기엔 애매한 그 지역의 더운 햇빛은 밖과 안을 전부 달궈줬다. 정확히 내가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아는척은 해야 되는 순간이었다. 아주 햇병아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뭐 제대로 아는것도 없었다. 가슴 한가운데엔 이상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두려움과 목적의식이 같이 들어 있는, 좀 묘한, 맛없는 칵테일 같은 것. 그때는 그걸 준비됨이라고 착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건 준비됨이 아니었다. 문은 열렸는데, 문 뒤에 뭐가 있는지는 아직 모르는 상태. 딱 그 정도였다. 아는건 쥐뿔도 없지만 일단 발은 내딛는 그런 상태.

당시의 사진. 솔직히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도 안난다

당시의 사진. 솔직히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도 안난다

하지만 이 글은 “어떻게 원하던 직장에 들어갔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들어가는 것 자체는 의외로 쉬운 편이다. 기관 홈페이지에도, 사업 설명회에도, 이런저런 국영문으로 진행되는 개발협력 뉴스레터/팟캐스트/기타등등 미디어에서도 어떻게 하면 자신들 기관에 들어올 수 있는지 아주 질릴 만큼 자세히, 정성스레 설명해 준다. 인턴십, 현장경험, 네트워킹, 글로벌 마인드셋, 등등... 잘 안나오는건 고 다음이지.

몇 년 동안 준비해 온 일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현장에 도착했는데, 막상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 일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또 충분히 많은 수가, 정말 그냥 일을 안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아니, 일을 안 한다기보단 일을 망치는 방향으로 아주 부지런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이게 진짜다. 홈페이지나 링크드인에는 잘 안 나온다. 당연하지. 그걸 누가 넣어.

먼저 조금 정리를 하고 가자. 내가 말하는 건 무능력이 아니다. 무능력은 인간적이다. 용서 가능하다. 아니 용서도 아니지. 나 역시 커리어 내내, 아니 인생 전체를 통틀어 꽤 넉넉한 분량으로 보여줬으니 남을 욕하거나 용서할 처지는 아니다. 지금도 가끔 보여준다. 어제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고, 내일도 분명.

내가 말하는 건 좀 다른 종류의 문제다. 회의실에 당신이 바로 옆에 앉아 있는데도 당신이 쓴 보고서에 대한 공을 자연스럽게 자기 것으로 가져가는 동료. 아무 브리핑도 없이 현장으로 보내놓고 왜 산출물이 이 모양이냐고 묻는 상사. 공동체와 참여와 현지 주도성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정작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는 않는 선임. 지역사회, 회복력, 파트너십 같은 말을 너무 유창하게 해서 더 짜증나는 유형들. 듣고 있으면 아, 이 사람은 저 단어의 뜻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저 단어를 말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구나 싶은 사람들. (뭔지 아시죠? 아마 다들 만나보셨을 겁니다. 지금 앞/뒤/좌/우에 앉아있을 수도 있구요. 삼가 위로의 말을 표합니다.)

이 사람들이 특히 더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는 이유는, 나랑 같은 딱지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같은 회의에 들어가고,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가치와 원칙을 입에 올린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문제인가 싶어진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건가? 원래 시스템이라는 건 자존심과 포지셔닝과 급하게 끊는 비싼 항공권 위에서 돌아가는 건가. 프로젝트는 분명 현장에서 일어나는데, 의사결정은 늘 서울이나 제네바나 뉴욕이나 어디 그런 - 하루 식비가 사업지 한달 생활비가 되는 - 데서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건가. 내가 그걸 빨리 받아들일수록 덜 다치는 건가. 아, 먼저, 그건 절대 아니란거부터 못박자. 쓸데없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