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Vincent라는 프랑스 친구가 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프랑스로 돌아갔지만, 2017년 우연히 시내 술집에서 만난 그는 한결같은 유쾌함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대체로 술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에 영양가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애초에 인생에서 영양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술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 터. 우리는 타국살이의 애환부터 시작해서 정치, 사회, 종교, 문화 등 성역 없는 대화 주제를 안주 삼아 기나긴 밤을 보내왔다. 어차피 다음 날 술에서 깨면 모두 휘발될 이야기였기 때문에 우리는 술기운에 의지한 채 가감 없이 각자의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

그날의 주제는 ‘역사’였다. 프랑스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은 적이 있는 베트남에서 프랑스인과, 일본으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은 적이 있는 한국인이 역사에 대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베트남 문자체계인 “꾸옥응으(Quốc Ngữ)” 역시 식민지 시절에 프랑스 선교사 알렉상드르 드 로드에 의해서 정리되었다는 이야기, 대표적인 베트남 음식으로 알려진 쌀국수 “퍼(Phở)” 역시 식민지 시절 프랑스 정착민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설 (따라서, “퍼”라는 이름 역시 프랑스 대표 소고기 요리인 “포토푀(pot-au-feu)”의 마지막 글자에서 유래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처음에는 그저 고대 이집트 문명의 신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술병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대화는 메소포타미아를 건너 식민지 베트남 시절에 대해 열을 올리고 있었다.

1945년 9월 2일은 베트남이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날이다. 하지만 그날이 독립기념일이라는 사실은 알아도 어느 나라로부터 독립했는지 모르는 베트남 친구들을 놀라울 정도로 많이 만났다. (혹시나 내가 짧은 경험으로 속단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함 마음에 방금도 현지 직원들에게 물어봤으나 절반이 대답하지 못 했다) 그에 비해서 확실히 한국은 일제 치하의 역사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 까닭에 일본 제국주의라면 하나 같이 치를 떨기 마련인데, 베트남은 그런 분위기는 아닌 것이 처음에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런 까닭에 좀 더 느슨한 마음으로 베트남 식민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Vincent는 분명히 그 당시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열강이 아시아,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하였고, 그때 이루어진 착취로 인해서 지금까지 경제 불균형이 이어지고 있음도 분명히 인정하였다. 너무나 맞는 말이라서 내가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Vincent가 프랑스인으로서 베트남 식민시절에 대해서 사과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 언성을 높이거나 상대방의 발언을 질책하지 않는 것이 우리만의 규율이었기에 설령 내가 감정적으로 상하거나 바라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을 여과 없이 말할 수는 없었지만,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을 일제 치하의 유전자를 바로 지니고 있는 나에게는, 한국인으로서 이 주제가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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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음 날 술에서 깨어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 일에 대해서 Vincent가 사과하거나 해명할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분명히 그 역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두 번 다시 그런 시대가 시작되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아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프랑스 사람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한다면, 그리고 기어코 사과를 받아낸다면 달라지는 것이 뭐가 있을까. 내 기분? 식민시절에 대한 사과는 고작 내 기분 하나를 위해서 이뤄져야 하는 일인가?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향해서 침략 전쟁을 시작했다. 애초에 전쟁에 명분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이번 침략 전쟁은 그 여느 전쟁보다도 많은 공분을 사고 있다. 전쟁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곳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고, 전쟁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부터 목숨을 잃는다. 역사를 통틀어 전쟁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지금도 어디선가 총성이 울리고 있을 미얀마, 아프가니스탄도 마찬가지다. 이번 침략 전쟁이 아무런 저항 없이 러시아에 의해서 종료된다면, 러시아 아닌 다른 패권 국가에서도 똑같은 침략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침략 전쟁에 계속 맞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함께 연대해야 한다.

베트남보다 총성에 가까운 곳으로 돌아간 Vincent를 떠올린다. 그는 여전히 그곳에서 친구들과 러시아 침략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평화를 외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백 년 전, Vincent의 조상들 역시 프랑스의 식민제국에 대해서 반대했으리라 짐작해본다. 마치 수 천명이 체포되는 이 순간 속에서도 전쟁 반대 시위에 나서고 있는 러시아 사람들처럼. 패권국가의 횡포는 그 나라 국민들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국민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사람의 잘못이라고.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의 비극이 누군가를, 특정 나라를 혐오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전쟁에는 명분이 없지만 책임은 분명하다. 하루빨리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