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15, 2023
삽화 1: 세계보건총회는 매년 5월 제네바 Palais des Nations 에서 진행됩니다
지난 5월 21일부터 30일까지, 9일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76회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 WHA)가 개최되었습니다. **194개 회원국의 보건부가 매년 5월 모여 진행하는 WHA는 WHO의 주요 안건들이 결정되는 최고의결기관(Main decision-making body)**인데요. WHA에서는 각 회원국이 WHO 집행이사회(Executive Board)에 제출한 보건 주제에 대해 논의하고, 세계와 자국의 보건 전략 및 목표에 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또한 이미 진행된 전략의 수행 결과와 성과를 공유하고, 앞으로 어떻게 방향을 조정해야 할지 토론하는 장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 순간, WHA를 다같이 돌아봐야 할까요? 이번 WHA는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먼저 COVID-19 국제 공중보건 위기 상황 (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 PHEIC) 선언이 해제된 후 처음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이전 3년간은 핵심 인력을 제외하면 모두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는데요. 펜데믹에서 벗어나, 국제보건 논의의 장이 정상적인 규모로 돌아왔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WHO의 설립 75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WHO 사무총장은 이번 WHA를 통해 천연두 박멸, 소아마비 종식, 흡연율 1/3로 감소 등의 성과를 발표하며, WHO의 75주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삽화 2: 쉽게 ‘팬데믹 조약’ 이라고 불리는 것의 공식 명칭은 “전염병 예방, 준비 및 대응에 관한 WHO 협약, 협정 또는 기타 국제 문서” 입니다 (출처: WHO, 문서번호 A/INB/4/3)
올해 총회의 큰 화두 중 하나는 COVID-19에 대한 회고와 이후 필연적으로 발생할 다른 전염병에 대응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COVID-19 이전에도 국제적인 전염병 대응 규범은 있었습니다. 2005년 개정된 국제보건규칙 (International Health Regulation, IHR) 인데요, 위 언급한 국제 공중 보건 위기 상황 선포와 각 나라 현황 보고 등의 협약 사항이 IHR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COVID-19 대유행 기간에 국제보건규칙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지난 75차 WHA에서는 국제보건규칙의 수정을 위한 위원회가 발족하였고, 내년 77차 WHA에 그 결과를 발표하기로 합의했는데요. 새로운 국제적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올해 2월 팬데믹 조약(Pandemic Accord)의 초안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국제보건규칙의 보완적 기재로 작동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팬데믹 조약은 내년까지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어 올해 WHA의 공식 의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총장이 기조연설에서 ‘역사적인 조약이 되어야 할 것’, ‘기존의 방식을 유지할 수는 없다.’ 등 강력한 발언을 하며 조약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후 총회 내내 회원국들에 의해 언급되었습니다. 팬데믹 조약이 어떠한 모습으로 발표될지, 내년의 WHA가 기대됩니다.
삽화 3. 1980-90년대 결정 이후 WHO 사업 예산 중 의무분담금(파란색)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줄어든 반면, 자발적 분담금(빨간색)의 비율은 최근까지도 약 80%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출처: WHO, 문서번호 EB148/26)
WHO 회원국들은 2024-2025 예산안에서 **의무분담금 비율을 직전 예산 대비 20% 확대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회원국들의 이러한 결정은 가히 ‘역사적’이라고 할 만한데요. 그 이유는 ‘의무분담금’ 확대에는 단순히 예산 증대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WHO의 의무분담금은 각 회원국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책정된 분담금으로, WHO 내 사업 우선순위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1980~90년대 회원국들이 ‘의무분담금 동결’에 합의한 이후, WHO 예산의 80%는 특정 용도에 귀속되는 ‘자발적 기여금’에 의존해 왔습니다.
이에 따라 WHO는 재정 안정성 확보를 위한 구조개혁의 의지를 지속해 내비쳐 왔고, 합의점에 이르게 된 건데요. 그 전에도 2021년 1월, WHO 집행이사국은 재정 안정성 위원회(WGSF)를 출범시키며, 의무분담금 확대를 추진해왔습니다. 이번에 WGSF의 권고안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2030-2031 예산안에서는 의무분담금 비중을 최대 50%까지 늘리고자 합니다.
이러한 결정은 향후 WHO가 팬데믹, 전쟁과 같은 국제보건 비상사태에 유연하게 대응할 역량을 갖출 수 있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현재 WHO에 수많은 자금을 대고 있는 국가(미국, 중국 등)와 비국가행위자(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등)들의 입김으로부터 독립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