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저녁 10시. 에어컨의 낮은 진동음과 키보드 소리가 사무실을 채우고, 쓸데없이 밝은 형광등 불빛이 텅 빈 책상 위로 쏟아진다. 복도는 이미 불이 꺼져 어둑한데, 창밖으로는 전철이 - 아마 막차가 -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아, 결국 오늘 퇴근도 택시네. 이렇게 정말 오랜만에 2주 연속 야근기록을 세운다.
그래, 이게 바로 직무기술서나 채용 공고에 절대 적히지 않는 국제개발협력의 ‘조용하고 재미없는’ 뒷면이다. 오늘 밤 할 일은 사업 제안서와 발표 자료 만들기. 지난 몇 년간 축적된 자료와 현장보고서, 수십 차례의 회의록, 지구 반대편 사업지의 현장 인력이 보낸 이메일이 모니터를 빽빽이 뒤덮는다. 우선 이 산더미 같은 자료의 맥락을 읽어내고, 필요한 조각을 추려 일관된 이야기로 엮어야 한다. 최근 사업 평가보고서를 들춰 보고, 십여 년 전 진행한 비슷한 프로젝트 내역과 대조하며 최초 기안과 궤가 맞는지도 확인한다—가끔은 산으로 새니까. 그리고 문서 서식 손질, 공유 폴더 백업(매우 중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제작 등 잡다하지만 필수인 일도 수두룩하다. 마감은? 다행히 다음 주 수요일. 물론 ‘야근 1주일 연장’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앓는 소리를 하지만 사실 요즘 기초 행정 작업이나 자료 분석에는 예전만큼 시간을 쏟지 않는다. 우리 모두의 구세주, AI 덕분이다. 관련 문서를 우르르 집어넣고 “요약해 줘” 한 줄만 던지면, 길어봐야 5분 안에 논리정연한 보고서가 뚝딱 나온다. 내가 혼자 하면 빨라야 서너 시간, 길면 하루 넘게 걸릴 일을 컵라면 한 개 기다리는 사이에 끝내니 월 20달러 구독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 심지어 상위 요금제(월 200달러)로 업그레이드할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내 상사는 이미 한 것 같고. 마시는 술을 조금 줄이면 또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나만 쓰냐? 또 그렇지도 않다. 2023년 처음 ChatGPT를 만졌을 때만 해도 사무실에 이걸 아는 사람이 열 명도 채 안 됐지만, 지금은 전 직원이 최소 하나씩은 AI 툴을 돌린다. 또 지난 2년 새 성능이 폭발적으로 향상돼, 이제 AI는 내 업무와 일상 전반에 스며들었다. 예전엔 간단한 통계나 문서 요약 정도만 맡겼었지만, 지금은 기본적인 글쓰기, 번역, 기초 연구, 문헌 조사, 브레인스토밍까지 가능하다. 그 꽃은 행정업무의 자동화다. 서류 작성, 일정 조율, 반복 이메일 처리? 통으로 맡긴다. 온라인 회의를 녹음한 뒤 “녹취록이랑 요약 좀” 하면 알아서 정리해 준다. 출장 정책 초안, 신규 현지 직원 직무기술서 작성 등의 업무도 AI에 슬쩍 넘긴다..
이젠 아침에 출근해 노트북을 열면 가장 먼저 챗GPT, Perplexity, 구글 Gemini를 띄운다. 이 셋 (그리고 기타 등등 AI툴) 없이는 일 못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성능이 조금만 더 좋아져서 그냥 알아서 척척 다 처리해 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자꾸 든다.

(어서와 스카이넷)
AI의 도움은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 때로는 안도감까지 준다. 특히 사업 현장에서 갑작스러운 지원 요청이 들어와 대응 보고서나 설문 분석 등을 급히 내놔야 할 때 그렇다. 몇 분이면 초안을 짜 주고 문서 구조까지 세워 주니, 요령을 부리지 않고도 (내가 쓰면서도 거짓말인 거 알지만) 틀을 빠르게 완성하고 그 속을 채우는 데 더 많은 공과 시간을 들일 수 있다. 수십 페이지짜리 제안서도 여러 사람이 나눠 쓰다 보면 문장과 논리가 흐트러지곤 하는데, 이런 때도 AI로 문장을 명료하고 간결하게 다듬는다. 작년 이맘때 쓴 에세이에 영어 문장을 매끄럽게 하는 도구로 Grammarly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사실 그 이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을 정도로 지금은 어지간한 교정은 챗GPT를 사용한다.
효율성과 속도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AI를 사용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이점은 이 도구를 통한 학습이다. 나의 멍청함을 견디는 무한한 인내심과 의지를 응원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1:1 멘토를 가지게 된 느낌이랄까. 내가 잘 모르는 주제(예를 들자면 태평양 도서국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라던가)를 참고해서 글을 써야 할 때 AI에 설명을 요청하면 매우 자세하고 친절하게 정보를 알려주고 계속되는 추가 질문에도 화내지 않고 답변을 해준다. 예전에는 유사 사업을 진행해 본 선배 전문가의 머릿속, 아니면 수백, 수천 페이지 가이드라인과 설명서에만 있던 지식이 너무나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어졌다. 이러한 학습기능은 특히 막 업계에 발을 내딛는 초급전문가에게 든든하다. 막막하게 느껴지던 기술적 개념이나 사업관리 제반 업무 내용을 매우 친절하고 나에게 답하는 것 이외에 아무런 할 일이 없는 한가한 멘토가 24시간 곁에 붙어 앉아 내가 던지는 모든 질문에 즉석에서 친절하게 맞춤형으로 설명해 주는 기분이니까. 물론 토큰이 남아있다면.
이 모든, 그리고 말하지 않은 온갖 장점에도 불구하고 “걱정 따윈 없다”라고 하면 분명 거짓말이다. 문득 “이러다 내 자리 없어지겠는데?”라는 생각이 스치곤 한다. 버튼 하나 딸깍 눌렀을 뿐인데 예상보다 훌륭한 보고서 초안이 튀어나올 때 느끼는 그 묘한 기분—솔직히 말해 쾌감과 불안이 동시에 몰려온다. 내 프롬프트가 매우 좋았구나 싶으면서 “그럼 나는 무슨 가치를 더할 수 있지?”라는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AI를 못 쓰면 뒤처질까, 걱정이고, 잘 쓰면 대체될까, 더 걱정인, 묘한 딜레마다. 동료들과 농담처럼 말한다. “ChatGPT만 잘 굴려도 행정 인력 90% 줄일 수 있겠다!”—그러다 “어, 그다음 순번이 나네?”. 월 단돈 20달러로 백 배 월급을 받는 직원을 대체할 수 있다면, 누가 안 하겠나.
뭐 지금이야 AI가 환각이나 컨텍스트를 헷갈려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다지만, 지난 2년간의 발전 속도를 보면 곧 해결될 문제라 생각한다. 또 누군가는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안 때문에 결국 ‘덜 효율적인 인간’에게 일을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민감 정보를 쓰려면 익명화하거나 승인된 보안 플랫폼을 쓰라고 조언한다.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만 해도 겉으로는 “AI 무단 사용 금지”라는 깐깐한 가이드라인을 내세우지만, 막상 팀마다 ‘AI 담당’이 있다. 쏟아지는 일의 속도를 감당하려면 결국 AI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민감 정보를 가리고 사내 프록시를 거치는 식으로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AI가 주는 생산성 이득은 놓치지 않는 절충점을 찾고 있다. 그 모든 조심스러운 절차 역시 “어떻게든 AI를 쓰기 위해” 마련된 안전장치일 뿐이다.

(정말 팝콘이랑 손에 묻은 소금이나 쪽쪽 빨아먹어야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맨 위의 화요일에서 이틀이 지난 목요일 (다행히 수요일은 정시 퇴근했다.) 갑자기 도너에게서 연락이 왔다. 신규 사업에 대해 써둔 기획서와 예산 견적이 있으면 당장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구두로 논의는 되었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뭐가 오가지도 않은 시점에서 굉장히 당황스러운 요청이었다. 상사에게 찾아가니 안 그래도 사업지 정부도 처음에 했던 말과는 다르게 사업 내용을 바꾸고 싶다는 요청을 전달했다고 한다. 현지사무소에 연락하니 자신들은 모른다며 우리보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한다. 아…
상사 방의 공기는 말하지 않은 불만과 짜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분석할 데이터도, 생성할 보고서도 없었다. 그저 복잡한 권력 역학, 그리고 살얼음 같은 이해관계 - 와 사이에 낀 우리 - 만이 있었다. AI는 쓸모가 없었다. 이 순간 필요한 것은 데이터 처리능력이 아니라 얽히고설킨 관계를 이해하고 읽어내는 능력이었다. 단지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 뒤에 숨겨진 감정과 역사와 관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요구했다. 비언어적 신호를 읽고, 신뢰를 쌓고,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능력이 필요했다.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협력을 촉진하는, 오롯이 인간만의 독특한 기술이었다.
결국 AI는 내 손을 덜어 줄 수는 있지만, 내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내 일은 완벽하게 서식이 지정된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보고되는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이해관계자 간의 신뢰와 상호 존중의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AI는 수려한 텍스트를 생성할 수는 있어도 국제개발협력의 진정한 기반이 되는 인간관계, 의사소통, 문화적 역량, 그리고 윤리적 판단을 복제하지는 못한다. 외딴 마을의 지역사회 회의에 나를 대신해 참석하거나, 자녀의 예방접종을 망설이는 어머니의 걱정을 감지하거나, 파트너십 회의에서 섬세한 외교를 펼칠 수도 없다 (물론, 이건 나도 못한다). 이러한 상황들은 공감, 문화적 이해, 그리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요구한다. 인간이 뛰어나고 기계가 심각하게 부족한 영역이다.
무엇보다, 나는 내 일을 ‘좋아하니까’ 여전히 일한다. 그러한 진심은 AI에는 없다. 사업기획서를 작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망설이는 후원자를 설득하거나 팀이 사업을 잘 실행하도록 촉진하는 것은 결국 나의 일이다. 즉 우리가 일에 쏟는 진심은 대체될 수 없다. 하루의 마지막에 받아보는 예방접종률 증가와 간호사 교육 성공과 같은 긍정적인 결과에서 느끼는 희열은 오롯이 인간만의 것이다. 그러한 인간적인 감정이 이 일의 원동력이며,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AI는 직(職)으로서의 국제개발협력을 도울 수는 있지만, 내 업(業)으로서의 국제개발협력을 대신하진 못한다.